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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게 온 미래 | 최옥란 열사 ?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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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및 자문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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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한평생 ‘변방의 존재’로 머물다 간 이들,
그죽음의 순간조차 불평등했던 이들,
그러나 그 불평등마저 저항으로 벼려낸 이들
장애해방열사가 산 자들의 ‘이 세계’에 남긴 것
한 장의 유서가 촉발한 저항: 김순석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조선일보》(1984. 9. 22에 실린 김순석의 유서
1984년,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 앞으로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순석(1952~1984. 9. 19. 김순석의 죽음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대두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항거로 평가받는다. 어려서 겪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던 그는 1980년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심한 장애를 입게 되었다. 그래도 세공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액세서리를 만들고 팔며 꿋꿋이 생계를 이어갔고,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번번이 도로의 턱에 가로막혀 운신조차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꾹꾹 눌러 담은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1984년 9월 22일의 일이었다.
그의 억울한 죽음은 친목 위주의 단체였던 대학정립단 소속 학생들(주로 소아마비장애인들을 행동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그가 생을 마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월 6일 장애인 복지시설 정립회관 운동장에서 열린 제8회 전국지체부자유 학생체전 개회식에 김순석의 모조관을 들이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