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4
서문 26
1부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서문_안쓰러운 하나님 34
하갈_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40
사라를 위한 변명_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103
아브라함 1_믿음의 조상: 하나님을 위한 변명 159
아브라함 2_아브라함을 위한 변명: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215
이어주는 이야기
하박국_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응답받은 기도 276
2부 |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서문_하나님의 마음 326
라합 1_‘당신의 딸’라합의 마음 속‘부르짖음, 체아카’를 들으시는 하나님 334
라합 2_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390
보아스와 룻 1_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440
보아스와 룻 2_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 소서 471
맺는말 552
<책속에서>
그 순간이었다. 전능자의 난감한(?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내 마음 가득했던 서러움과도 차원이 다른 색깔의 감정이 하나님의 표정에 가득해 보였다. ‘미안함?’, 아니, 분명히 그 감정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건 아니다. ‘아쉬움?’, 아니, 그 정도로 표현될 표정이 아니었다. 그 크기와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길 없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는 하나님의 표정을 어떻게 감히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때의 하나님의 표정을 설명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표정에 압도당하던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 하나님께 느끼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피조물인 우리 입장에서는 최선일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표현이 안쓰러움?… 비슷한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날 이후,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감정(?, 이게 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분명히 그날 이후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분명히 깊어졌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이 안쓰러웠다. 그때 그 순간 내 입을 통해 내 허파에 남아 있던 작은 양의 공기가 한꺼번에 배출되면서 나온 나의 고백은 이러했다.
“하나님, 괜찮으세요?” _ 39p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는 곳’이지,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양식이 있는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CMF에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해왔다. “천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악동(惡童들이 가는 곳이다. 예를 들어보자. 간사님의 아들이 평소에 아빠 말도 잘 듣지 않고 아빠가 집에 들어가면 게임을 하느라 아빠한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심부름도 안 하는 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옆집에 사는 간사님의 아들과 동년배의 아이는 정말 인사성도 바르고 시키지 않아도 모든 것을 성실히 하는 아이라고 해보자. 이 경우, 나중에 간사님이 죽은 뒤 간사님의 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