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매체
1. 그들의 시축(詩軸을 위하여 붙여진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_고연희
‘시축’이 예술 제작의 주체였다?
세종 시절의 시축 문화
『몽유도원도시축』 계획에서 완성까지
‘시축’이 발휘했던 에이전시
2. 청록(靑綠: 도가의 선약, 선계의 표상
―조선 중기 청록산수화의 제작에 대한 소고_유미나
청록, 신선 세계를 나타내는 색채
청록 계열의 다채로운 색채와 안료
청록의 석약(石藥이 지니는 불로장생의 효능
조선 중기 도교의 부상과 청록에 대한 관심
조선 중기 청록산수화의 활발한 제작
3.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은 어떻게 고미술을 재현했을까?_김계원
유리건판, 지식의 생산에 매개하다
카메라, 유물 앞에 서다
사진, 촉탁 연구자의 조사 체계를 만들다
사진, 모사도와 협력하다
사진가, 유물 촬영의 테크닉을 개발하다
사진, 유물을 가치중립적인 이미지로 연출하다
유리건판, 현해탄 사이에 맴돌다
왕권
4. 왕의 이름으로
―이성계(1335~1408의 삶과 자취를 따라 본 관련 유물과 예술_서윤정
행위자성: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의 활동
어진: 왕과 같은 존재, 물건-행위자
함경도: 이성계의 이름으로 성역화된 풍패지향(豊沛之鄕
함흥본궁 소나무와 이성계 유품: 신령한 물질적 매개체, 물건-행위자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예술의 후원자, 행위자성의 발현
건원릉, 전설이 된 태조
5. 움직이는 어진
―태조어진(太祖御眞의 이동과 그 효과_유재빈
조선 초기 태조 진전의 성립과 어진의 이동
선조 연간 태조어진의 피난과 포상
광해군 연간 태조어진의 입성과 영접
인조 연간 태조어진의 소실과 위안제
이동을 통해 강화된 어진의 행위력
6. 병풍 속의 병풍
―왕실 구성원의 지위·서열·책무를 위한 표상_김수진
연향에 놓인 병풍, 연향을 기록한 병풍
시축에 붙여진 ‘조연’로서의 「몽유도원도」
젤의 이론으로 조선시대 전기의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보면, 안견(安堅, ?~?의 「몽유도원도」는 예술작품으로서의 평가가 아닌 시축(詩軸을 제작하는 데 기여한 측면에 시선이 가닿는다. 다시 말해, 시축이라는 매체가 그것을 계획하고 기여하고 향유한 사람들에게 끼친 에이전시 측면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몽유도원도」는 『몽유도원도시축』의 중심에서 비켜서서 시축의 격조를 도와주는 보조장치로 전이한다. 그동안 “시축 속 시문의 위상보다 그림의 위상을 더욱 높았다고 보았던 관점은, 순수예술품의 가치를 높이 보고자 하는 근현대기의 선입견(先入見”(45쪽이었음이 동시에 드러난다. 시축을 구성하는 시문들 중에 「몽유도원도」를 칭송한 부분은 매우 적고 칭송에도 인색하다. 이는 당시 선비들의 안중에 「몽유도원도」는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주제의 제목도 「그들의 시축(詩軸을 위하여 붙여진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지은이는 “조선 전기의 ‘시축’ 문화의 이해 속에서 「몽유도원도」가 포함된 『몽유도원도시축』의 제작과정을 논하고 이를 통하여 「몽유도원도」의 속성을 파악”(23쪽하고자 한다.
시축은 조선 전기 왕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사들의 시가 적혀 있는 두루마리, 즉 시권(詩卷에 축(軸이 장식된 물건이다. 보통 시축은 계획하는 사람과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조선조 세종 연간에 「몽유도원도」라는 그림 뒤에 하필이면 시축이라는 두루마리라는 매체를 선택하여 그림이 아닌 시와 글로서 안평대군의 꿈과 사람됨을 칭송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백과사전을 예로 들면 시대에 따라 매체가 종이책으로, 시디(CD로, 지금은 웹으로 이동해 갔듯이, 두루마리는 당대인이 선호한 매체에 불과할 뿐이었다. 여기서 지은이 고연희는 “시대마다 선호하는 매체가 있으니 그 매체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통로”라고 귀띔한다.
“세종조 왕실에서 시축 제작에 적극적이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