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_ 강성영 총장
추천의 글 _ 일제 퇴트 박사
한국어판에 부치는 글
머리말
1. 브레슬라우에서 베를린으로, 1906~1923
가문(家門
베를린 유년기와 청소년기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다
2. 튀빙엔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오다, 1923~1927
튀빙엔에서 보낸 두 학기
이탈리아 여행
베를린에서 형성한 신학
『성도의 교제』
“무엇이 더 낫습니까, 수업 혹은 방학?”
3. 지평의 확장, 1928~1931
바르셀로나 해외 수련목회자 시절 33
베를린 조교 시절 40
뉴욕 학생 시절 43
4. 처음으로 한 일들, 1931~1932
본회퍼와 칼 바르트의 만남
첫 에큐메니칼 운동 참여
첫 목사직
첫 강의들
“나는 처음으로 성서에게 왔습니다”
5. 교회 투쟁의 시작, 1933
히틀러의 권력장악
교회의 상황
6. 런던 이민목회 시절, 1933~1935
“목사직의 고요함”
불충한 “해외 성직자님들”
본회퍼의 파뇌 평화 연설
독일로 돌아오다
7. 설교학 세미나의 지도자, 1935~1937
형제의 삶
『나를 따르라』
고백교회에 대한 압박
8. 불법으로 가는 길, 1937~1940
신학원의 새로운 형태
『신도의 공동생활』
고백교회의 위기
미국으로 탈출?
9. 공모의 시기, 1940~1943
체제전복 준비
『윤리학』
사랑스러운 여인 폰 베데마이어
10. 베를린 테겔 감옥 시절, 1943~1945
수감되다
『저항과 복종』
『약혼자의 편지 감방 92』
마지막 몇 달들
에필로그: 살인자인 성자?
1945년 이후 본회퍼의 수용 상황
오늘의 디트리히 본회퍼
붙임글: 예수 따르기의 본보기, 본회퍼 _ 김흥규 목사
역자 후기
디트리히 본회퍼 연표와 가계도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