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제임스 네스터는 우연한 기회에 단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에 취재를 나가게 된다. 그때까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날의 취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하나의 ‘사건’이 될 줄은.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이 프리다이빙의 ‘프’ 자도 모르던 그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네스터는 프리다이빙 규칙과 스타 선수들을 구글링하며 하루를 보낸다. 잘 모르는 경기지만,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배드민턴이나 댄스 경연처럼 별난 취미쯤으로 여겨질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튿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고개를 동서로 돌려보고, 남북으로 끄덕여봐도 하늘과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중해 한가운데서, 스쿠버 장비도, 산소줄도, 구명조끼도, 하다못해 오리발조차 끼지 않고 수영복 하나 달랑 걸친 선수들이 건물 30층 높이의 수심까지 잠수했다가 올라왔다. 심판이 목청껏 알리는 수심 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면 선수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하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누구 하나 억지로 물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아주 천연덕스럽게, 마치 원래 그곳에 속했던 존재인 양. 우리 모두의 고향이 그곳이라고 웅변하는 듯.” 그로부터 나흘간 네스터는 이 경기를 취재 나온 전 세계 유일의 기자로서(프리다이빙은 지금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였다 몇 명의 선수가 300피트 가까이 잠수를 시도하는 걸 더 지켜본다. 선수들은 코피가 흘러 피범벅이 되거나 의식을 잃거나, 심지어 심장이 마비된 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기는 계속됐다.
선수들은 보통 사람들이(심지어 과학자들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깊이까지 잠수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전신 마비가 오거나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도전한다. 그래선지 해마다 수십에서 수백 명의 다이빙 선수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