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01 교사에서 군인으로
긴 칼을 차고 싶었던 소년, 군인의 길을 가다
02 만주군 장교가 되다
패전으로 무장해제, 초라한 귀국길
03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다
이승만 대통령, 사형 선고받은 박정희를 구하다
04 현실정치에 눈을 뜨다
이승만 타도 위한 쿠데타 계획 모의
05 세 차례에 걸친 쿠데타 모의
“가자. 가다 죽더라도 가자”
06 5·16 운명의 그날
“여보 김 장군, 그대로 밀어”
07 쿠데타 성공하다
권력은 둘로 나눌 수 없다
08 국가운영의 질을 높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09 국정운영의 달인(達人
현장 행정, 확인 또 확인…
10 한일 국교 정상화
‘제2의 이완용’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11 제2의 군사쿠데타 감행하다
일본과의 수교 연기했다면?
12 월남전과 대한민국
“미국이여, 월남을 도와야 한다”
13 한국군 월남에 파병하다
파병 협상에서 미국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참고문헌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박정희는 ‘국민의 인기’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연예인 대통령’이 아닐 뿐 아니라, 포퓰리즘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기 위해 “가진 것 나눠 먹으며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비난을 각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를 지향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집권 초부터 서거할 때까지 일관되게 추구했던 지도자로서의 철학이었다.
한국군 월남 파병, 한일 국교 정상화, 향토예비군 창설, 고속도로·제철소 건설 등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었지만, 한편에선 국민들에겐 지지리도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국교 정상화 대가로 일본이 제공한 자금을 일제하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제철소와 고속도로, 소양강댐 건설에 70퍼센트의 자금을 투입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통 큰 결정’이었다.
위대한 지도자로
박정희 재임 기간 18년은 경제학자 좌승희의 표현을 빌린다면 마차와 지게가 주류였던 농업사회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가 주류를 이루는 공업사회로 나라의 기틀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지도자가 국리민복을 위해 몸 바쳐 일했다고 해서 그 지도자가 반드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전후(戰後 프랑스의 새 역사를 쓴 드골 대통령도 철모르는 국민들의 비판에 어지간히 속을 썩였는지 “프랑스 국민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풀만 내려다보는 소떼”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인간은 신(神이 아니기에 업적을 쌓는 동안 수많은 실패와 실수,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 실수와 실패, 잘못을 뛰어넘어 성공의 길로 나갔으니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나라를 빛낸 인물들의 생애에서 성공한 사례, 위대한 점, 긍정적 이미지, 본받아야 할 점 등을 찾아내 그 위에 스토리텔링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