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 말똥가리, 출퇴근하는 쇠기러기, 싸움닭 까치
오늘도 새와 나는 같은 얼굴로 살아갑니다
말똥가리는 몽골과 시베리아처럼 추운 북쪽 지방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겨울철, 날씨가 더욱 매서워져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면 그나마 따뜻한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고향에 먹이가 풍족하거나 먹이 경쟁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면 고향에 머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이 워낙 팍팍하다 보니 고향 땅을 등지고 먼 이국땅으로 떠나올 수밖에요.
말똥가리뿐만이 아닙니다. 겨울 즈음이면 말똥가리처럼 추운 곳에서 나고 자란 새가, 여름 무렵이면 동남아시아나 호주처럼 더운 곳에서 나고 자란 새가 우리나라로 옵니다. 이동하면서 목숨을 잃는 철새가 전체의 30~50%에 이른다고 합니다. 몇날 며칠을 쉬지 못하고 날아야 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철새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새 터전을 찾아 나서는 셈입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쉼 없이 날아온 탓에 그만 탈진해 죽는 일도 수두룩합니다. 기진맥진하니 천적에게 쉬이 잡아먹히기도 합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아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쇠기러기는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영업 사원처럼 먹이를 찾아 아침저녁으로 바삐 오갑니다.
텃새라고 해서 상황이 더 낫지도 않습니다. 여러 이유로 먹이와 삶터가 점점 줄어드니, 끊임없이 먹이와, 천적에게서 자신과 새끼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까치는 누군가 제 영역을 침범하면, 그게 맹금이든, 뱀이든, 심지어 사람이든 득달같이 달려듭니다. 언뜻 드세 보이지만 제 목숨이 달린 일에 고군분투하는 것이니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이주 노동자 같은 말똥가리, 출퇴근하는 쇠기러기, 싸움닭 같은 까치. 어딘지 눈에 익은 모습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고자 이민·이직·이사하는 얼굴, 돈을 벌고자 매일매일 옥작복작한 일상을 꼬박꼬박 살아내는 얼굴, 때로는 내 것을 지키고자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