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발간사
역자 서문
제69장_ 관백이 어떻게 중국을 정복하려 했는가와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새로운 관백으로 임명하며 지위를 물려준 조카 대납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제70장_ 일본 영주들이 토로하는 중국 정복 계획에 대한 어려움과 관백이 더 효과적인 정복을 위해 중국에 인접한 조선을 먼저 무력으로 정복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제71장_ 선에 대한 설명과 아고스티뉴가 그의 군대와 함께 어떻게 조선으로 출발했는가에 대해
제72장_ 아고스티뉴가 어떻게 조선으로 출발해서 곧바로 일부 성을 공격했는가와 매우 용감하게 무력으로 정복함으로써 그곳에서 획득한 명예에 대해
제73장_ 쓰노카미가 조선의 서울에 입성할 때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제74장_ 어떻게 하여 노관백이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았고, 어떻게 일본 측 전황이 악화되고 불리해졌는지에 대해
제75장_ 아고스티뉴가 중국군과 어떻게 야전을 치르고 승리를 거뒀는지에 대해
제76장_ 중국군이 일본군과 치른 다른 전투와 그동안 발생한 여러 일에 대해
제77장_ 병사들이 아고스티뉴에게 평양성을 포기하도록 설득한 일과 이와 관련해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제78장_ 일본군이 어떻게 서울을 포기했는지와 평화 협상을 논하기 위해 아고스티뉴가 어떻게 중국의 사신 두 명과 나고야로 향했는지에 대해
제79장_ 관백이 중국 사절에게 준 회답과 이후 아고스티뉴가 조선군에게 거둔 빛나는 승리와 성공에 대해
제80장_ 관백이 명령한 몇 가지 일에 대해
부록
- 용어풀이
- 루이스 프로이스와 『일본사』
- 『일본사』 필사본 소장처
출판사 서평
루이스 프로이스는 1563년 일본에 도착한 이후 1597년 나가사키에서 사망할 때까지, 전국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몸소 경험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계획하고 치르는 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극소수 이방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일본사』는 16세기 후반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유럽인이 작성한 대표적인 필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사』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임진왜란에 관한 기술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지막 열 개의 장이 이 부분에 해당한다. 프로이스는 일본군의 전쟁 준비를 비롯해...
루이스 프로이스는 1563년 일본에 도착한 이후 1597년 나가사키에서 사망할 때까지, 전국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몸소 경험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계획하고 치르는 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극소수 이방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일본사』는 16세기 후반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유럽인이 작성한 대표적인 필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사』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임진왜란에 관한 기술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지막 열 개의 장이 이 부분에 해당한다. 프로이스는 일본군의 전쟁 준비를 비롯해, 부산에 도착하여 조선의 성을 하나하나 점령하기 시작해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성을 공격하는 상황, 명군의 도래와 강화 협상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의 중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양 삼국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이 서양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는지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또한 근대 초기 서양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를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 당사자인 일본군 내부의 사정을 서술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아고스티뉴(고니시 유키나가와 도라노스케(가토 기요마사의 경쟁 관계에 대한 서술에서는 가톨릭교도인 아고스티뉴를 지지하고 비가톨릭교도인 도라노스케를 노골적으로 비난[“사악한 이교도인 도라노스케”(64쪽, “교활하고 술수로 가득 찬 위선자 도라노스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