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며 나는 농부입니다
1장 ?나의 발명 이야기
개발 1호, 귀로 보는 저·고온 온도 경보기
눈의 무게를 재는 밤의 불침번, 적설 경보기
자전거의 변신, 모종 식혈구
씨앗 인큐베이터, 변온 발아기
1인 3역 일관 피복 작업기
비닐하우스 환기창 때문에 다친 아내
세계 최초의 감전 안심 자동 개폐기
사람과 작물에게 다 좋아야 한다
비닐하우스 자동 개폐기가 잠수함입니까?
규정이 농민 목숨보다 중요한가
모든 일의 기준은 농부
특허분쟁
우리가 세계로
2장 ?육백마지기에서
하나의 공식, 육백마지기는 망하는 곳이다
육백마지기와 마주 서다
산신축문으로 찾아온 이덕영 농부
험난한 퇴비 운반길
사람 손의 백 배 성능, 파종기
싹이 자란다, 기쁘고 감사하다
육백마지기가 남긴 슬픈 초상
미련한 놈이 곰을 잡는다
불신이 낳은 것들
태풍의 상처 뒤에서도 희망을 보다
금 모으기? 호밀씨 모으기!
1,200 고지의 푸르른 바다
망해도 신난다!
당신 팔자 고쳤네
신뢰가 최고의 가치다
조롱, 감탄, 부러움, 다시 비난
책상머리 행정이 밭에 나무를 심는다
훈장? 사양합니다
청옥산의 또 다른 재미, 농장 관리사 짓기
농가의 살길은 농산물 가격 안정
잡초에게 공을 돌린다
3장 ?남한농부에서 통일농부로
나를 북한으로 이끈 정근우, 정철수
금강산 남새농장
1,200평이 1만 2,000평으로
북한 가는 거, 재고할 수 없냐?
애증의 첫 방북
아버지는 돕고 아들은 감시하는 서글픈 현실
부지 평탄 작업에 대한 오해
연습 없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언덕 넘어 태산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입네까?
농부가 울 때
남북이 함께 치는 환희의 박수
끝내 오고야 만 금강내기
마침내 첫 수확이 이루어지다
통하는 마음, 변하는 사람들
하나의 기쁨, 통일 연습!
다시 초심으로
북고성군 농업협력단
대북 협력 사업에 흔쾌히 참
농부가 농사짓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려고
그 이유를 알려면 그가 한국 유기농업인 1호라는 것부터 봐야 한다. 그는 1950년에 ‘전쟁둥이’로 태어났다. 그가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70년대에 유기농업을 한다는 사람들은 “되지도 않는 짓을 하는 미친놈” “남 몰래 밤에 농약을 치면서 낮에 거짓말이나 하는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증산만이 지상목표이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과학영농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극은 “화학농법을 쓰는 한, 농부가 아니라 죄인”이라는 깨달음으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유기농업에 앞장서왔다.
그런 신념은 평창의 육백마지기에서 꽃을 피웠다. 해발 1,200미터 고지에 12만 평 규모의 드넓은 농토를 가리키는 육백마지기는, 1960년대 화전민들이 처음 땅을 일군 이래 고랭지 채소를 줄곧 생산하던 옥토였다. 그러나 이해극이 이곳을 만난 1990년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수탈농업의 결과였다.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만류했지만, 그는 이곳에서 유기농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비록 자신은 실패하더라도 새롭게 도전할 누군가를 위한 본보기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성공했다. 1995년의 기록적인 배추 파동 때에도 육백마지기에서는 오히려 풍작을 일궈냈다. 그 비결이 바로 유기농업이었다. 구체적으로 육백마지기에 적용된 농법은 호밀을 녹비작물로 재배한 것과 잡초와 공조하여 ‘땅심’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휴경기 동안 호밀을 심어 지력을 높이고 잡초를 활용해 표토를 보호하는 농법은 겨울이면 혹한에 시달리고 여름에는 폭우에 흙이 모두 쓸려 내려가는 1,200미터 고지 육백마지기에 꼭 맞는 것이었다. 이는 농부는 자연과학자라는 지론대로 그가 그곳의 자연환경과 작물의 생육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했기에 가능했다.
필요하면 만들고, 만든 것은 나눈다
그가 그저 유기농업인이 아니라 성공한 유기농업인이 된 데는 또 하나 꼭 필요한 것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