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세 모녀는 마치 예방주사를 맞듯 아침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일일 아침드라마를 즐겨 보게 된 것은 15년 전쯤.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저자와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동생, 동생의 이른 등교에서 해방된 엄마는 자연스럽게 함께 아침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TV 앞에 앉으면 사랑과 배신과 거짓말과 위기와 모면과 극복과 복수가 쉴 틈 없이 일어나, 졸린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각자의 하루에도 사랑과 배신과 거짓말과 위기와 모면과 극복과 복수가 기다릴 것이기에, 세 모녀는 마치 예방주사를 맞듯 아침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으며 머리를 말리며 눈썹을 그리며 아침드라마를 보고 나면 잠은 달아나고 전투력은 올라가 있었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_아침마다 비극을 접하고 길을 나서는 사람치고는 꽤나 흥겨웠던 발걸음
그렇다면 아침드라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희극이라 부르기에는 과하게 슬픈(? 설정, 비극이라 부르기에는 순진무구한 해피 엔딩. 이에 저자는 아침드라마는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고루 갖춘 종합극으로서 경계를 횡단하는 급진성을 가지는 대단한 장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아침드라마에 수시로 등장하는 상상을 초월한 가족 관계―남편의 전 부인의 동생을 사랑하고, 비혼모에 계약결혼을 하고―는 “법적 혼인으로 결속한 비장애인 시스젠더 헤테로 부부가 낳은 비장애인 시스젠더 헤테로 두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을 그저 조연을 넘지 못하는 평범하고 밋밋한 존재들로 만든다. 기준과 조금만 달라 보여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현실과는 달리 아침드라마 속 세상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가족도, 어느 누구 하나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머글들 사이에서 평생 자신이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서 받았던 환대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침드라마는 아침마다 우리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편협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허무는 유연하고 급진적인 매체였던 것이다.”
_<한지붕 세가족>에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