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알아야 할 인물, 김만덕
한국 역사에서 여성 인물을 찾기란 마땅하지 않다. 가장 많이 아는 여성 인물이 신사임당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여성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여성이 역사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그 이름들이 전해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 속 사라진 여성 인물을 찾는 것은 여성의 조상을 찾는 의미가 있다. 김만덕은 신사임당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인물이다. 김만덕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오만 원권 지폐 주인공 후보까지 올랐으나, 대중성이 강한 신사임당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미천한 자의 위대한 나눔, 수많은 굴레 속에서 당당히 살아낸 조선 여성, 그것도 싱글 여성의 남다른 삶은 어떤 가치를 부여해도 부족함이 없다. 당시 김만덕은 혁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제주 여성에서 조선 여성으로
유배의 섬, 제주 사람들은 육지로 나올 수 없었다. 노동력 이탈을 막고자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출륙금지령 때문이다. 제주 여성은 육지 남성과 혼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년 넘게 옥죄던 출륙금지령이 해제되었으나, 이것은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법이었다. 여성은 여전히 제주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다. 이런 제주에서 김만덕은 당당히 육지 땅을 밟았고, 임금을 만났고, 호위를 받으며 금강산을 구경했다. 이것은 당시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김만덕이기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방방곡곡에서 김만덕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사대부들의 눈초리는 대체로 곱지 않았다. 김만덕이 신분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천민은 천민의 위치에서 천민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감히 양반의 범위를 침입한 것이다.
실학 실천의 모범적인 사례, 김만덕
사대부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김만덕은 정조를 비롯해 실학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공식적으로 법을 어겼다. 이것은 사회를 실용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조와 실학자들의 의지가 담긴 행위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