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킹메이커의 시대 Ⅱ 네빌 가문 Ⅲ 솔즈버리의 리처드 Ⅳ 킹메이커의 유년 시절 Ⅴ 요크의 대의 Ⅵ 내전의 시작, 세인트 올번스 Ⅶ 칼레의 수장, 해군 제독 워릭 Ⅷ 망명 Ⅸ 승리와 재앙, 노스햄튼과 세인트 올번스 Ⅹ 타우튼 전투 XI 에드워드 4세의 승리 XII 북부에 찾아온 평화 XIII 워릭과 에드워드 4세의 분열 XIV 배신의 게임 XV 헨리 6세를 위하여 XVI 에드워드 4세의 귀환 XVII 바넷 해제-장미전쟁의 열쇠,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중세 말을 장식한 피와 강철의 게임
장미전쟁의 가장 강력한 가문, 네빌 가문의 킹메이커와의 만남
샤티옹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난 후의 잉글랜드는 극심한 혼돈에 빠져듭니다. 길고 길었던 전쟁의 결과는 프랑스 내 영토 대부분의 상실이었고 전쟁에 소모된 잉글랜드 국내에서는 자원의 고갈과 함께 민심의 불만이 폭등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랭커스터 가문의 왕 헨리 6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잉글랜드 각지의 대가문들은 표류하는 정권의 확보를 노리게 됩니다. 이윽고 붉은 장미로 상징되는 랭커스터와 흰 장미로 상징되는 요크라는 두 거대 파벌이 잉글랜드의 패권을 두고 전쟁의 포문을 엽니다. 후에 장미전쟁이라고 불리게 될 영국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미전쟁의 판을 움직인 주요 인물들을 꼽는다면 비극적인 왕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왕비, 요크파의 수장인 요크의 리처드 공작, 리처드공의 아들 에드워드 4세, 그리고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중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장미전쟁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다른 네 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얘기됩니다. 본서는 영국에서도 그 역할이 과소평가되었다고 얘기되는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복권에 관한 본격적인 시도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부터 조지 R. R. 마틴까지
거장들의 창작의 영감이 된 장미전쟁의 시대를 관통하다
장미전쟁은 잉글랜드의 대가문들 거의 모두가 관여하여 랭커스터파와 요크파로 편을 나눠 이뤄진, 귀족과 기사와 종자 들의 내전이었습니다. 그중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속한 네빌 가문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습니다. 3대에 걸친 계속된 혼인동맹으로 가문을 넓힌 네빌가는 잉글랜드 전역에 걸친 광활한 영지와 무수한 봉신들을 바탕으로 정계를 좌지우지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