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뉴욕의 거리
십대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디트롤라 카메라로 여동생인 데보라를 주로 찍곤 했으나, 사진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뉴욕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십대 초반 레이터는 가족을 등지고 홀로 뉴욕 맨해튼에 정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맨해튼의 동쪽인 이스트빌리지로 집을 옮겨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1950년대 초 뉴욕은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로, 이스트 빌리지 십번가에는 일종의 협동조합인 ‘십번가 갤러리’들이 하나둘씩 설립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레이터는 빌럼 데 쿠닝의 아내이자 화가인 일레인 데 쿠닝, 리처드 푸셋 다트와 같은 초기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대표 주자들과 교류하며 회화와 사진 활동을 이어 갔다. 특히 푸셋 다트가 레이터의 작품을 유명한 예술품 딜러이자 갤러리 경영인이었던 베티 파슨스에게 소개하면서 그녀에게 전시를 제안받기도 했다. 유진 스미스, 에드워드 스타이컨과 친분을 쌓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레이터는 이들과 어울리면서도 성공의 기회를 잡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듯, 이러한 제안들을 마다하고 매일같이 집 근처를 산책하며 사진 찍을 뿐이었다. “평화로운 가운데 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던 그 자신의 말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지럽고 현란한 뉴욕을 포착한 반면, 레이터는 오묘하고 고요한 뉴욕의 거리를 담아냈다. 특히 고가철도에서 내려다본 비 오는 도로(p.30나 유리창에 비친 잡화상 풍경(p.22, 짙은 명암의 대비로 포착된 인도 위의 남자(p.37, 혹은 빛이 반사되어 마치 긴 드레스처럼 한 여성 위로 겹쳐지는(p.41 초기 흑백 이미지들은 시점과 반영으로 채워진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의 렌즈에는 주로 일상적인 거리와 평범한 사람들이 담겼지만, 신기한 우연과 놀라운 해프닝들이 가득했다. 판자가 가로형 프레임으로 활용되어 피사체들이 그 안에 배치되거나(p.49, 고양이가 길가의 나무에서 절묘하게 뛰어내리는(p.39 순간처럼 즉흥성과 대체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