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한 짓,
그 행동을 가능케 한 세상을 고발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직접적인 성폭력 피해자는 최지영과 이하늘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최지영의 딸 가온이와 이하늘의 동생 결이가 있다. 봄만 되면 도지는 불안증과 불면증을 안고 사는 엄마를 오래 지켜본 가온이는 친구 결이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아챈다. 언니의 자살로 힘들어했던 결이는 가온이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회복해 가고, 언니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간다.
피해자는 긴 세월 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홀로 그 고통을 감당하다가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찾지 못했다. 가해자는 성폭행을 저지른 남자 하나가 아니었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게 막고, 그들이 생각하는 더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너만 참고 견디면 된다는 암묵적인 강요를 했던 이들 역시 모두 가해자였다.
이 이야기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새겨진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보여 준다. 또한 그 폭력의 트라우마가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최지영과 이하늘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고통과 싸우는 동시에, 딸들과 동생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증언을 시작한다.
그날의 일을 복기하기 위해, 되도록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나는 잊고 싶은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그게 너무 무서워서 지금도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주위를 맴맴 도는 것 같습니다. 이 두려움과 고통을 당신은 상상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이 글을 읽는 것은 당신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 157쪽
일기와 편지 그리고 유서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증언
이 이야기에는 일기와 편지 그리고 유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고백이 담겨 있는 형식으로 쓰인 글들은 이 소설이 ‘허구’라는 점을 자꾸 잊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김중미 작가의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