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을불이 국내성을 떠난 것은 봉상왕 2년, 서기 293년 9월 열나흗날 이른 새벽이었다.
을불은 그때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성의 높은 담을 뛰어넘어 망루의 파수병에게 들키지 않고 성 밖의 마장까지 간다는 것은 을불 소년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나흗날 달은 서편으로 기운 채 환하게 밝았다. 만일 파수병의 눈에라도 띄는 날에는 영락없이 붙잡히고 말 것이었다.
열다섯 살이었지만 기골은 청년만큼 장대하고 여덟 팔 자로 째진 눈은 달빛을 되받아 무서운 야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왕의 손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어젯밤 이슥해서였다. 을불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어젯밤에도 이슥하도록 활터에서 활을 쏘고 있었다. 을불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돌고를 따라 사냥터에서 활 솜씨를 익혀 이미 그의 궁술은 성안에서는 귀재로 이름이 나 있었다. 무예를 연마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한 가지를 익히면 다음이 더 어려워진다.
- 11~12쪽
한인들의 행패를 말로만 듣다가 직접 난민들을 만나니 새삼 깨닫는 바가 적지 않았다. 고구려가 건국한 지 이미 3백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기가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부족 연맹체의 성격을 띠고 있던 고구려는 안으로는 왕권을 둘러싼 분쟁과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다.
그중에서도 고구려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한족과의 투쟁이었다. 백제와 신라는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한족과는 국지적인 투쟁을 했으나 고구려는 직접 북쪽의 대륙에 자리 잡은 한족들과 늘 정면 대결을 해야 했다. 북쪽뿐만이 아니었다. 남쪽으로는 패수 남쪽에 군치를 둔 낙랑군의 도전도 받아야 했으므로 아래위로 한족에 둘러싸여 나라를 보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30~31쪽
꿈속에서 어머니 사미 부인이 나타나 눈물을 죽죽 흘리며 을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을불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다가 그만 돌에 정강이가 부딪쳐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사방은 조용한 채 여름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