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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B급 한국사 - 지식의 빈틈을 메워 주는 역사 잡학 사전
저자 김상훈 저,김의솔
출판사 행복한작업실
출판일 2019-07-05
정가 15,800원
ISBN 979119638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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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_ 한국사가 친숙해지는 책

Chapter 1 삶의 궤적 그리고 전통 : 우리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여인은 왜 새벽에 서낭당 주변을 서성였을까? _ 결혼 개념 변천사|허례허식을 전통이라 해서야 쓰나 _ 혼수와 예단의 근원|공무원 채용 시험은 과거 시험에서 유래했다? _ 과거 시험에 얽힌 이야기|고려 시대에 입시 학원 광풍이 불었다 _ 첫 사설 학원의 역사|수백 년을 버틴 세계 유산 _ 팔만대장경 생존기|외교라고 말하지 마시오! _ 여성의 아픈 역사, 공녀|서울이 홀라당 타 버릴 뻔한 적이 있다 _ 최초의 소방 조직 이야기|빨간 배추김치는 19세기 이전에 볼 수 없었다 _ 조선 시대의 음식 문화|우리 역사에 인육까지 먹던 참사가 있었다 _ 최악의 기근 사태|그 옛날의 폭탄주는 강했다 _ 주당들의 음주 문화|천민이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유 _ 성씨와 족보 이야기|마을 이름에 슬픈 역사가 담겼다 _ 서울 지명의 유래|조선 시대에 UFO가 나타났다? _ 미확인 비행 물체의 실록 기록|최초의 서양 병원은 제중원이 아니다 _ 제중원 논란과 제생의원 스토리|명성 황후가 한국에 화교를 불러들였다? _ 화교의 역사|현모양처는 일제가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_ 순성여학교 이야기|사진만 보고 결혼하던 때가 있었다 _ ‘사진결혼’의 아픈 역사

Chapter 2 역사를 만든 사람들, 역사가 만든 사람들 :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
일본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 왕자 _ 아좌 태자 이야기|두 번 왕후를 지낸 여성이 고구려에 있었다 _ 왕후 우씨 이야기|신라 성골은 왜 진골에게 왕위를 넘겨야 했을까? _ 선덕 여왕 탄생 비화|근친혼과 권력 쟁탈전의 오묘한 공존 _ 천추 태후의 삶|세종은 백성에게 물어 세금 제도를 결정했다 _ 세계 최초의 여론 조사|변절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_ 신숙주를 위한 변명|인수 대비의 두 고모는 공녀였다 _ 가문을 살린 한씨 자매 이야기|조선 시대 팜므파탈, 어우동의 비극 _ 여성과 성 이야기|신분 장벽 극복한 조선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51가지 이슈를 통한 우리 역사 깊이 읽기

역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탄생한 시점부터 시작하여 문명의 발달 과정을 살펴본 뒤 각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고 서로 먹고 먹히는 가운데 명멸하는 기나긴 여정 앞에서 숨이 막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사에 해당하는 한반도와 주변 지역으로 범위를 좁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사는 역사의 흐름을 새롭게 형성한 입체적이고도 중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반면, 한국사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 단위가 촘촘하고 앞뒤 사건의 연결 고리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세계사보다 더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 책이 ‘B급’을 표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순에 따라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하나하나 파고드는 형태의 공부 방법은 역사가 ‘암기 과목’이었던 시절의 유물이다. 이 책은 한 가지 이슈를 선택하고 이와 관련한 사건과 현상들이 각 시대와 국가들에서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과거부터 그래왔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이르러 왜곡된 변종 역사임을 확인하게 되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율곡 이이는 왜 어머니의 친정인 오죽헌에서 자랐나?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가다. 이이는 외가에서 자란 셈이다. 실제로 신사임당은 결혼한 뒤에 친정에서 20년을 살다가 뒤늦게 시댁으로 향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 이이가 태어난 때가 1537년이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도 건국 후 150여 년이 지나도록 여자가 시집을 가는 종법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 이전인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지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고, 딸도 동등한 몫의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