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주선이 도착했다
1. 낯선 한국어의 세계에 어서 오세요
: 표준어와 일상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온도 차
혀의 연대기 / 다중 우주, 아니 다중 언어를 상상하라 / 사전에 빵꾸 내기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다시 찬드라의 경우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1
2. 지금, 여기 말들의 풍경
: 폭력과 재난, 혐오와 차별의 현장에서
말들의 풍경 / 어느 식민지 출신의 고백 / 당신의 혐오가 당신을 찾아온다 / 긴 의자 / 분노를 팝니다 / 금지된 글 / 1956년 5월 18일, 맑음 / 한국인이라는 문제적 집단에 대하여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너의 이름은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2
3. 지금, 여기 배움의 풍경
: 한국어 교실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시험에 대한 열정 /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 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 한국어, 착취의 언어 / 그녀가 갈 수 없는 곳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3
4. 그 말은 ‘진짜’가 될 수 있나요?
: 언어와 그 너머의 것들
근로하지 말고 노동하라 / 도둑맞은 말 / 보이지 않는 도시 / 현실은 글자 네 개 밖에 있다 / 용서, 불가능한 / 인공지능이라는 가짜 믿음 / MBTI와 나 / 시간의 재발명 / 아파트
에필로그: 나의 자매들에게
그리고 남은 말들: 한국이라는 ‘언어의 서식지’를 탐구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들
| 외국인도 아닌 외계인의 눈으로 한국어를 바라보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접촉의 순간’들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살펴보다
한국 사람들은 단일 언어 세계에 살고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동일한 장면에서 동일한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만일 ‘그런 당연한 걸 왜 묻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의 물음들에도 답해 보자. ‘다라이’ ‘벤또’ ‘빵꾸’ ‘구루마’ 같은 말들은 식민 시대의 잔재인 일본어일까, 지역방언일까? ‘미싱’이나 ‘오함마’, ‘공구리’ 같은 노동 현장의 언어는 꼭 순화되고 고쳐야 하는 언어인 걸까? 이 땅에 존재하는 250만 이주민들의 언어(와 그 차이는 한국어로 볼 수 있는 걸까?
전작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에서 ‘문맹’이 되어 타국에 들어가 낯선 리듬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탐험한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언어, 자신의 모어이자 모국어인 한국어를 ‘외계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런 그가 펼쳐 보이는 한국어의 세계는 생각보다 낯설고 기이한 모습이다. 제주 사람이 제주 친구에게 제주어로 편지를 쓰다가 어색함을 느끼고는 기형도 산문집에서 본 편지투를 따라해 편지를 쓰는 모습. ‘미싱’ ‘오함마’ 같은 건설·공장의 노동 언어는 순화어로 바꿔 사용하자고 하면서 ‘블리딩’ ‘컨스티페이션(변비’ ‘가스 아웃’ 같은 의료 현장의 언어는 신비한 주문을 보는 것마냥 감탄하면서 듣는 모습.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이주민들만 피해서 전파되는 것은 아닐 텐데 오로지 한국어로만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되는 모습.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말들을 둘러싼 장면들에, 그 ‘접촉의 순간’들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이를 자전적 성찰과 정치한 메타포, 비판적 담화 분석과 SF적 상상력까지 품는 섬세한 글쓰기로 꼼꼼히 살펴본다.
|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 속에서 말들의 의미는
고정되지 못하고 언제나 유예된다.”
유예되고 미끄러지는 말들을 붙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