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근대 유럽의 젠더 평등을 주장한
아르테미시아와 작가들
아르테미시아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은 견고한 가부장제 그늘 아래서 여성 억압이 팽배한 사회였다. 당시 여성은 그저 집안 남자들의 소유물이자 재산으로 분류되어 물질적 재산은 물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조차 갖지 못했고, 중매결혼이나 수녀원의 경제적 볼모였다. 그러한 시대였음에도 아르테미시아는 뛰어난 재능으로 일찍이 화가 아버지 오라치오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시작했고, 예술가로서 경험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아르테미시아의 미술수업을 맡은 아버지의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가 수업을 빙자해 어린 아르테미시아에게 접근, 거칠게 저항하는 그를 강간한 사건으로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전환기를 맞는다. 하지만 결코 수동적 피해자로 머물기를 거부한 아르테미시아는 로마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간 재판을 견디고 살아남아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 화가로서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잉글랜드 등에서 활동하며 당대 여성 지도자들과 교유했다. 또한 그가 남긴 여러 유의미한 작품은 재발견되고 연구되면서 현대에 전해지고 있다.
이 책 『여기, 아르테미시아』는 총 7장에 걸쳐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로 불리는 아르테미시아의 삶과 작품, 그리고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문학 작가들의 페미니즘 텍스트를 다룬다. 책에는 여성 혐오 글을 아무 검열 없이 발표하는 남성 작가들에 맞서 반론의 글을 발표한 용감한 여성 작가(루크레치아 마리넬라, 크리스틴 드 피장, 모데라타 폰테, 라우라 체레타 등들의 목소리는 물론, 시각이미지로 페미니즘을 전파한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을 함께 묶어 초기 근대 유럽의 미술과 문학작품을 재조명한다.
이 책 전반에 걸친 주제는 ‘아르테미시아’이다. 오늘날 학자 대부분은 이 화가를 아르테미시아라고 부른다. 나는 이 화가에 대해 글을 쓸 때 내가 그를 성이 아닌 이름, 아르테미시아로 부르는 것은(종종 여성을 얕잡아보는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단순히 그의 아버지와 그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