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2차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한 히로히토 일왕의 조건없는 항복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통치하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21일 미군정하에서 국가경찰이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 날이 우리나라 국가경찰의 창설일로 정착되었다. 3년간의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초대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는데 결국 우리나라 국가경찰은 초대정부보다 3년이나 긴 역사를 갖게 됐으며 건국경찰로서 적지 않은 일익을 담당했다. 이어서 우리나라 국가경찰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주요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구국경찰이라는 또한번의 큰 공적을 남겼고, 호국경찰 더 나아가 민주경찰이라는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러한 경찰사 속에서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는 역대 정부들이 주장해 온 자치경찰제의 도입이었다. 비록 제주도에 국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2006년 7월 1일을 기해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직속으로 127명(2012년 11월 현재 107명을 정원으로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일부지역이긴 하나 자치경찰제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대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며 아직도 논의가 반복되는 긴 숙제로 남아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가경찰은 2012년 10월 창경 67주년의 길목에서 볼 때 양적, 질적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었다. 우선 경찰조직적인 측면에서 2012년 10월 21일 기준 16개 지방경찰청 산하에 249개의 경찰서가 설치 및 운영 중이며 경찰인력의 측면에서도 총인원이 101,349명에 달했고 향후 2~3만명의 증원이 예고되어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이러한 규모적 발전뿐만 아니라 경찰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학문적 차원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49년 전인 1963년 3월에 동국대에 경찰행정학과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1981년에는 정규 4년제 국립경찰대학이 설립되어 120명이 입학하고 1985년 1회 졸업생부터 경위로 임용되는 등 경찰간부를 배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