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앤 시인의 첫 시집 『못다 지은 집』에는 시인이 미국으로 떠나온 뒤 살아온 삶의 곡절과 애환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만큼 시는 시간의 발자국과 가슴 속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묘한 영역인 것이다.
떠나온 고향과 이제는 흘러가버린 과거시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시 <자화상>의 시적 진술을 통하여 시인은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가는 ‘슬픔 같은 것, 그리움 같은 것’을 직시하고 있다. 거울이나 사진을 통하여 응시하는 자신의 얼굴이 때로는 아주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현실과 내면의 두 자아를 지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기 거북이> <열매 세 알> <내 열일곱 나이> <기억> <그날 밤 마지막으로> <입덧> <그리운 집> <기지개> 등은 박앤 시작품 특유의 따뜻함과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초겨울> <저녁미사> <봉헌> <내 사랑아> <곡> <새벽의 노래2> <당신 앞에 갈 때> <올리브 오일 비누> <그 순하신 몸> 등의 작품에서 절대자에 대한 겸손과 절제된 삶의 표현양식을 다루고 있다. 카톨리시즘(Catholicism이 바탕이 된 신앙시이다.
박앤 시인의 시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기초 가운데의 한 부분은 바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영적 체험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삶은 항시 유한한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가 박앤 시인의 시집 표제처럼 ‘못다 지은 집’에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