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북한 스포츠, 그것이 알고 싶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체육정책
김정은과 ‘머니볼’
북한 스포츠의 핵, 4?25체육단
정대세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천리마축구단』의 놀라운 이야기
북한의 올림픽 성적
북한의 체육시설
‘공화국영웅’부터 ‘체육명수’까지 북한 스포츠 스타들의 대우
한반도 유일의 브론즈라벨 마라톤, 만경대상마라톤대회
북한 집단체조의 이면
참패한 북한 선수들은 정말 숙청되었을까?
북한 체육의 총사령탑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북한에서 스포츠 선수가 되는 법
북한의 스포츠 리그는 어떻게 운영되나
북한의 대표적 스포츠 경기장들
북한 스포츠의 산실, 청춘거리
인민들의 애호 스포츠는 배구와 탁구
데니스 로드맨과 김정은의 묘한 우정
북한 축구 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들
김정은의 스포츠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2장 북한 스포츠 스타 23인
아시아 최고의 육상선수 신금단
남북한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딴 한필화
남북한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호준
여자 쇼트트랙의 유일한 올림픽 메달 황옥실
조선의 주먹왕, 구영조
하나의 조국을 외친 세계챔피언 홍창수
역도 영웅 엄윤철의 투철한 사상
동양의 펠레, 박두익
페이스메이커 정성옥의 깜짝 우승
세계 유도계를 뒤집은 ‘뜬별’ 계순희
세계체조선수권 3연패의 ‘도마의 신’ 리세광
북한 최초의 프로복서 최철수
백두산만큼 높았다, 북한의 최장신 센터 리명훈
비운의 탁구 영웅 박영순
안마왕 배길수
도쿄를 기다리는 쌍둥이 마라토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도마공주 홍은정
입심도 금메달감 안금애
지구를 들어올려라, 림정심?림은심 자매역사
북한의 ‘마이클 조던’ 박천종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첫 금메달 김국향
북한의 ‘손흥민’ 한광성
북한 스포츠 대부, 장웅 전 IOC위원
3장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북한 스포츠
북한의 월드컵 8강 진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북한의 대활약
세계정상권의 여자축구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리가 몰랐던 북한 스포츠
① 올림픽 출전은 남한이 먼저, 하지만 금메달은 북한이 먼저
남한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에 참가해왔지만, 북한은 초기에는 북한의 올림픽위원회가 IOC에 인정받지 못했기에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이 첫 참가 대회다.(IOC는 한 국가에 하나의 올림픽위원회만 인정하는데 남한의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먼저 인정받으면서, 북한의 조선올림픽위원회는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금메달은 북한이 먼저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북한이 첫 출전한 하계올림픽대회에서 리호준 선수가 소구경 소총복사伏射 금메달을 딴 것이 남북한을 통틀어 최초의 금메달이다. 그는 금메달 수상 소감 인터뷰에서 “저는 과녁을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국놈의 털가슴으로 보고 쏘았습니다”라는 과격한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동계올림픽 메달도 북한이 먼저였다.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서 한필화 선수가 획득한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은메달이 그것이다.
②세계 육상 최강자가 북한에 있었다?
바로 1960년대 북한의 중거리 선수인 신금단이다. 전통적으로 남이나 북이나 육상에는 약했지만, 신금단은 특출나게 뛰어났다. 어느 정도였을까? 그녀는 신흥국가경기대회에 나가 200m, 400m, 800m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그중 400m와 800m는 세계신기록이었다. 그녀가 400m에서 기록한 51초4의 기록은 종전 기론이었던 53초4보다 2초가량 앞선 것이었으며, 당시 한국 기록이었던 1분03보다는 12초나 앞섰다. 하지만 이 기록은 비공인이다. 정치적 문제로 인해 신흥국가경기대회가 IOC에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그녀는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비운의 스포츠 스타였다고 할 수 있다.
신금단은 6?25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도쿄에 왔다가 자격이 박탈되어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 신문준 씨와 7분여 동안 눈물의 상봉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③북한에도 직업 스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