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 아아, 잊고 있던 ‘본디’의 미각, 내 어린 시절의 맛이 거기 있었다
봄
냉이 ? 속도 고치고 마음도 씻으라고 냉잇국
미나리 ? 미나리 파란 싹, 사철 먹으면 신선이 될까
고사리 ? 섬진강 새벽에 고개 드는 고사리의 정한 마음
국수 ? 문득, 국수 한 그릇 하고 싶다
명이 ? 아아, 저 들과 산에 봄에 나는 풋것들
여름
보리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오는 그리움
오이 ? 아삭, 생오이 같은 초여름 어느 날
감자 ? 별똥별 캐러 감자밭으로 가다
옥수수 ? 어여쁜 청춘처럼 고르고 싱싱한 알갱이들
밀 ? 까슬까슬 밀 이삭, 다 저 살자고 하는 눈물겨운 진화
매실 ? 봄엔 매화 보고 가을엔 매실 먹고
가을
토마토 ? 나의 최초의 토마토를 찾아가다
수수 ? 빗자루 하려고 밭둑에 한 줄 심는 게 고작이었지
장 ? 오랜 일꾼들은 스스로 된장이 되었다
포도 ? 마지막 가을볕은 포도를 위해 베푸소서
늙은 호박 ? 어디 한구석 표 나게 잘난 맛은 없어도
표고버섯 ? 똑똑똑, 신께서 나오라고 신호를 보내시다
겨울
두부 ? 부처가 내 빈속에 뜨끈한 두부로 오시다
김 ? 화롯불에 구워 간장 찍어 먹으면 제일 맛있지
콩나물 ? 기를 쓰고 자라려는 콩나물의 안간힘
시금치 ? 빈 겨울 들판에 시금치 저 혼자 푸르다
미역 ? 겨울 새벽바다에 미역을 걷어 올리는 어부가 있다
배추 ? 도 닦는 일이나 배추 기르는 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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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박찬일과 열세 스님이 ‘들판에서 만든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 23’
대안 스님 ? 향긋 고소한 냉이 표고버섯전
적문 스님 ? 고소하고 싹싹한 유부조림과 미나리무침
도림 스님 ? 맛生生 기운生生
스타 셰프와 열세 스님과 농부들이
산.들.바다에서 차린 소박한 맛의 성찬들
이탈리아 요리계의 스타 셰프이자, 글 잘 쓰는 요리사로 알려진 박찬일. 그래서 그가 쓰는 ‘먹는 이야기’ 만큼은 믿고 읽는다. 그가 이번엔 순수의 맛을 찾아 나섰다. 현대인의 극단적 식습관인 폭식과 미식美食. 그 사이에서 본류의 맛은 점점 잊혀 가고 있다. 자연에서 막 거둔 재료에 과장이 없는 조리 과정과 양념을 더한 최선의 맛! 그 맛을 찾아 그는 산과 들, 바다를 누볐다. 여정에는 정관, 선재, 대안, 우관, 적문 스님 등 사찰음식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열세 분의 스님이 동행했고, 농부들은 그들이 일구는 땅으로 기꺼이 안내했다.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이 땅에서 자라는 작물이 가장 성숙한 때를 기다렸다가 손수 거두어 음식을 만들었다. 산과 들, 바다가 내준 부엌에서 차려낸 맛의 성찬은 3년여 동안 계속되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소박한 기록이다.
왜 맛집 순례가 아니고 음식 재료 기행인가
섭생은 땅에서 시작한다
요리의 시작은 땅이다. 맛은 땅에서 시작한다. 스님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사찰음식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구고 거두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가 주방을 나와 땅으로 간 까닭이다. 거기서 그는 스스로 익기를 인내하는 작물의 간절한 시간들을 목격하며,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맛이 있다, 없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가를 깨닫는다.
“냉이는 추운 겨울이 없으면 달고 깊은 향을 내지 못하며, 미나리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 없이 향을 세포 안에 축적할 수 없으며, 고사리는 딱 며칠간의 따스한 봄날에만 여린 싹을 허락한다.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며,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1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
그가 ‘여는 글’에서 “폭식을 미식으로 알고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