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놀이터 개혁을 이끌었던 앨런 남작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습니다. 다리는 언제든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이 말에 흔쾌히 공감할 부모는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럼, 팔다리가 부러질지언정 아이들을 위험한 놀이에 노출시키는 게 잘하는 짓이냐고 펄쩍 뛸 사람들도 많을 테다. 하지만 이 책 『놀이의 과학』에서 저자는 일갈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다쳤다고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팔다리 골절은 대개 ...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놀이터 개혁을 이끌었던 앨런 남작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습니다. 다리는 언제든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이 말에 흔쾌히 공감할 부모는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럼, 팔다리가 부러질지언정 아이들을 위험한 놀이에 노출시키는 게 잘하는 짓이냐고 펄쩍 뛸 사람들도 많을 테다. 하지만 이 책 『놀이의 과학』에서 저자는 일갈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다쳤다고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팔다리 골절은 대개 놀이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부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우리는 아이들의 흥분과 모험심을 억누르기만 했다고, 아이들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놔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나친 관심은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말이다.
“아동과 청소년은 주변 세상과 그 안의 정서적 관계를 탐구하면서 자연스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는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만큼이나 크나큰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번도 위험을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는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위험과 마주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아니면 부모가 둘러쳐 놓은 거미줄을 걷어차고 위험할 정도로 반항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적절한 수준의 위험은 성장 과정의 건강한 일부를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