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대신 질문을 하는 이야기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다만 흘러갈 뿐이다. 시간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잭과 잃어버린 시간’이다. 잭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암시다. 과거는 산산조각 났고, 현재는 무의미해졌으며, 미래 역시 공허할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고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책머리에 실은 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에는 사건이 별로 없다. 삼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잭의 행동과 생각이 전해지지만, 듬성듬성하고 성긴 이야기라 결정적인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빈틈과 여백은 인물의 표정과 눈빛까지도 섬세하게 읽어 낸 그림들을 깊이 들여다보며 채울 수밖에 없다.
얽혀 있는 시간의 타래를 풀어 잭의 삶을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잭은 원래 괴팍하거나 퉁명스러운 성격이 아니었다. 유순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예쁜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가팔라진다. 안개가 몹시 짙던 어느 날, 아들 쥘로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곧이어 잭이 본 것은 등지느러미에 상처가 있는 회색 고래가 아들을 꿀꺽 삼키는 장면이었다. 그의 삶이 까마득히 곤두박질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지만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 바다에서도 뭍에서도 하늘에서도. 너무 시끌벅적해도 너무 조용해도 길을 잃을 수 있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디에서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잭은 배 위에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잭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간을 앞질러가지 않는 한,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잭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건,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로, 집으로,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금 인용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 화자가 가장 단호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