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란 누구인가?
그 이미지 뒤에 숨겨진 거부할 수 없는 진실
“가장 적은 제작비로 돈을 버는 방법은, 여배우의 옷을 벗기는 것이다!” 이 말은 영화계에서 여전히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흥행공식이다. 실제로 컬럼비아나 워너브라더스 같은 세계적인 영화사들은, 설립 초기에 여배우의 관능에 기댄 B급영화들을 쏟아내며 메이저 영화자본의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었다(19쪽 참조. 이처럼 영화가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서 여배우의 역할이 매우 컸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은 여배우들의 연기보다는 그들의 관능과 스캔들에 주목해왔다. 미셀 푸코의 말처럼 세상의 시선은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했고, 여배우들은 세상이 원하는 시선에 맞춰 자신들의 이미지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컨대, 마릴린 먼로는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금발 백치’ 역을 경력 내내 반복해야 했다. 그것이 남성들은 물론 많은 여성들까지도 원했던 먼로의 자리, 곧 그녀의 스타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먼로는 자기가 원치 않았던 위치에 있을 때, 더욱 사랑받았다. 저자는 그것을 ‘타자(他者의 자리’라고 봤다(5쪽.
악녀의 탄생
대중이 여배우를 통해 갈구했던 시선은 뜻밖에도 ‘악녀’였다. 남자 주인공의 사랑에 목숨 거는 지고지순한 여인의 이미지는 더 이상 공감을 사지 못했다. 남성관객들은 한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악녀와의 나쁜 로맨스를 꿈꿨고, 여성관객들은 바로 그 위험한 여성을 꿈꿨다.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영화 안에서 발명해낸 장본인은 1940년대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프랭크 카프라다. 카프라는 1930년에 <한가한 여성들>이라는 작품에서 바버라 스탠윅을 캐스팅해 ‘못된 여성’ 캐릭터의 전조를 알렸다. 이후 스탠윅은 빌리 와일더 감독을 만나 <이중배상>(1944년을 통해 나쁜 여자와의 스릴 넘치는 로맨스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베티 데이비스도 스탠윅 못지않는 팜므파탈의 레전드로 꼽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