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부 <망루의 결사대>의 미스터리
제1장 만주·조선 국경의 국책영화
제2장 하라 세쓰코와 이마이 다다시의 수수께끼
제3장 전쟁과 해방, 그 후
제2부 조선 시네마의 빛
제1장 베스트 시네마 <수업료>
―「수업료」 원문(전라남도 광주 북정공립심상소학교4 학년 우수영
제2장 <집 없는 천사>의 추락
제3장 ‘해방’ 전후의 조선 시네마
후기
연표 | 조선 시네마의 사회문화사 1935~45
조선 시네마 인물 사전
주요 참고문헌
<망루의 결사대>에는 왜 조선어로 부르는 <도라지 타령>이 나올까?
1943년 국책영화로 개봉된 <망루의 결사대>는 웨스턴 활극, 압록강 국경,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전후 영화를 대표하는 ‘영원한 처녀’ 배우 하라 세쓰코가 주연하고, 전후 ‘민주화’ 영화로 유명한 이마이 다다시가 감독했다.
영화 화면에는 주재소 안에 붙은 ‘국어(일본어 상용’이라는 표어가 빈번하게 비친다. 그런데 조선인끼리 조선어로 대화를 나누고 일본인 경관과 조선인 순사의 잔치에서는 조선어 민요를 낭랑하게 노래한다. 마을 학교에서 조선인 유 선생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본어이지만, 주재소의 일본인 순사는 조선어가 능숙하다.
1943년 말 조선에서의 일본어 보급률은 22.1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조선총독부 제86회 제국의회 설명 자료. 한편 조선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 공무원도 사실 적지 않았다. 조선국세조사 보고에 따르면, 1930년 기준으로 재조선 일본인 52만 7016명 중 일본어와 조선어를 다 읽고 쓸 수 있는 일본인은 3만 2714명(6.2퍼센트이었다. 이를 거주지별로 보면 군 지역 일본인 남성의 11.0퍼센트는 일본어와 조선어를 둘 다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망루의 결사대>의 일본인 경관이 직무상 조선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하나. <망루의 결사대>에서는 왜 조선 민요 <도라지 타령>을 조선어로 낭랑하게 노래하는 장면이 그려졌을까. 검열 책임자인 조선군 보도부장 구라시게 슈조倉茂周?(육군 소장가 이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제공한다. “우리는 조선인에게 황국신민이 되려면, 모름지기 ‘다꽝(단무지’을 즐겨 먹으라는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는다.” ‘제국 내의 지방색’으로서 조선의 민속이나 풍물을 그리는 것은 피할 일이 아니었고, 이는 식민지 시대 조선 영화가 담고 있는 포인트 중 하나다.
『한국영화사―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에서는 윤봉춘 감독의 <신개지>(1942를 마지막으로 조선어 영화는 금지되었다고 기술한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