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엄마가 되니 일상에서 철학이 피어납니다
여는 글: 내가 키우는 존재들, 나를 키우는 존재들
임신, 내 안에 아기를 품는다는 것
: 레비나스와 함께 플라톤의 동굴을 탐험하다
엄마가 되었습니다
출산 전야, 죽음과 처음 눈 맞추고 인사를 나누다
: 사르트르를 만나고 돌아와 하이데거와 악수하던 밤
출산, 수술대에 올라 자유를 생각하다
: 자유의 사슬, 누구와 어떻게 묶일 것인가
탄생, 아기와의 만남
: 아이의 눈동자에서 아렌트의 시작을 보다
잠깐만요, 엄마가 된다는 게 이런 것이었나요
수유, 나는 가슴이 달린 채 존재한다. 고로?
: 젖을 물린 채 가슴 해방 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엄마의 몸, 엄마의 삶
: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론이 서글프던 시간들
아이를 사랑하기, 남편을 사랑하기
: 부부의 세계에는 장자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_아빠로 변신하기
그렇게 엄마로 크고 있습니다
흉악한 곰 인형, 무서운 베이비파우더
: 소인국에 떨어진 걸리버 엄마의 시선 바꾸기
분리되어야 연결된다
: 홉스에게 분리 불안을 묻다
아이는 늘 까치발을 든다
: 아이의 눈높이와 대붕 이야기
아이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남의 아이와 비교하기
: 클레의 그림으로 루소를 읽다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마음
: 맹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아이들이 내몰리는 사회를 진단하다
산타는 대체 언제 와야 하는가
: 시몬 베유,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
바이러스와 공포의 시간
: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접는 글: 아이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경이로운 세계, 철학자의 눈
: 니체는 왜 아이처럼 살라 하는가
“수많은 육아서에서 결코 찾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쏟아진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철학자를 육아 도우미로 두다
한국과 미국에서 오랜 시간 철학을 공부한 작가는 철학은 일상에 있고 작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작가 또한 아이가 태어나자 비로소 한나 아렌트와 니체, 장자와 루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육아와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탄생은 엄마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질문 앞에서 ‘아이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아렌트의 신선한 사유를, “엄마의 몸은 아이를 키우는 도구일까?”와 같은 질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론을 연결한다. 수많은 질문으로 이루어진 철학의 기본을 마트와 거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터에서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물과 같다. 거품기 하나만 쥐여 줘도 손가락 열 개를 전부 사용하며 세상의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니체가 말한 아이로 돌아가라는 말은 삶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유쾌함을 지니라는 뜻과 같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어른들에게 무엇이든 “왜?”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아이가 반가운 이유다.
철학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의 가장 아름다운 역할은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요. 질문을 만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철학자가 되어 생각을 해보고 또 나름의 싱싱한 질문을 다시 만들어냅니다. 산파술이란 그렇게 단지 아이를 낳은 육체적 출산의 시점에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이후의 시간에도 일상에서 부지런히 행해져야 합니다. 아이는 좋은 생각과 질문을 낳아 엄마에게 던지고, 엄마는 또 그걸 받아 고민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 큽니다.
- <프롤로그>에서
질문하고 골몰한다는 건, 철학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과 같다. 작가 또한 엄마가 된 이후 난생처음 ‘가슴 해방 운동’을 찾아보고 부부간 관계를 장자가 말한 ‘달리는 수레’로 재정립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인 자신도 자라나는 일이다.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