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4
프롤로그 : 기억의 조각들 10
1부 프리 프로덕션
2015년 1월 31일 제작 노트
#1 기억의 시작
? 같고도 다른 시선의 만남(이길보라
? 베트남전쟁과 프로듀서의 일(서새롬
? 20세기의 벽 너머로(곽소진
2015년 2월 7일 제작 노트
#2 카메라를 내려놓다
? 그날이 오면 온 마을은 향 냄새로 가득하다(서새롬
? 증오비와 위령비가 말하는 것(이길보라
? 길 위에서 포개지는 시간(곽소진
#3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야기
? “제 할아버지는 참전군인이었어요”(이길보라
?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곽소진
2부 프로덕션
2016년 2월 23일 제작 노트
#1 어떤 기억의 부재
? “전쟁도 격렬하지만 평화 역시 격렬하구나”(이길보라
#2 ‘기념’과 ‘기억’의 시차
? 건너편에서 바라보다(이길보라
? 기념의 공간과 기억의 공간(이길보라
#3 증언, 그 안과 밖의 시간
? 그날의 기억(이길보라
?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서새롬
3부 포스트 프로덕션
#1 기록의 방식
? 기억과 질문으로 만들어진 영화(조소나
? 제3의 시선을 찾아서(이길보라
#2 다시 카메라를 들다
?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조소나
? “인물이 변화하고 있어요”(이길보라
#3 어떻게 기억을 마주할 것인가
?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조소나
? “아이들이 왜 미안해하는 거죠?”(이길보라
4부 개봉
#1 기억의 문을 열다
?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길보라
? 코로나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영화의 삶(조소나
? 관객과의 만남(이길보라
#2 끝나지 않은 기억의 전쟁(이길보라
#3 여성 촬영자, 시선의 방향과 사각지대(곽소진
부록
? 응우옌티탄 인터뷰 279
? 모두가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할 때(응우옌응옥뚜옌
? 영화 〈기억의 전쟁〉이 촉발한 사회운동의 윤리
: 한국 사회의 ‘저항’과 ‘양심’ 담론을 생각한다(정희진
“카메라를 내려놓은 곳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되었다”
베트남 중부의 증오비와 위령비를 지나
비석 너머의 이야기에 가닿기까지
2015년 겨울, 평화기행과 빈안 학살 49주기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베트남에 도착한 제작진이 마주한 것은 베트남 중부 마을 곳곳에 자리한 위령비와 증오비였다. 그곳에서 “증오가 형상을 가지고 있는” 듯한 비석과 그 위에 적힌 비문, 그리고 학살 희생자들의 이름 혹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보자인(Vo Danh, ‘무명’이라는 뜻의 베트남어’을 눈에 새긴다. 제작진은 먼저 카메라를 내려놓기를 택한다. 대신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나눠주는 독한 술을 받아 마신다. 촬영감독인 곽소진은 이러한 결정이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이기 이전에 학살지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 배려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 고통의 내부에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직도 하미 마을에 가면 학살 당시 희생된 마을 주민 135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의 비문이 연꽃 문양 대리석 아래 감춰져 있다.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가 학살 당시 상황을 묘사한 비문의 내용을 문제 삼자 마을 주민들이 비문을 삭제하는 대신 덧씌우기를 택한 것이다. 제작진은 “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도록 가려두는 마음”이 여전히 한쪽의 기억을 지배하는 ‘기억의 전쟁’ 한복판에서, 촬영을 한다는 건 카메라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용서받고 싶은 사람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잊고 살 수 있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사람, 일상을 비집고 들어간 사람과 그들이 떠난 뒤에도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재현하려는” 의도를 조심스럽게 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