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최후의 수사학 저술 『토피카』
법의 민족 로마 독자들에게 현실에 부합하는 실례로 설명하다
키케로는 자신의 최후의 수사학 저술인 이 책에서 동명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토피카』를 설명의 거울로 활용한다. 키케로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전통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두 작품이 다루는 내용은 그 궤를 달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들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변 규칙들을 다룬 것과는 달리, 키케로는 실제 연설에서 논소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야만 적실한지 그 방법을 모색한다. 키케로에게 연설은 이론 이상이었던 것이다.
책을 헌정 받은 트레바티우스는 로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법률가였다. 법률지식이 탁월했던 트레바티우스도 연설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키케로의 서재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변의 방식을 다루었다는 『토피카』를 발견하고 찾아내어 그 내용을 알려줄 적임자로 키케로를 지목한 것은 도입부에 설명된 바이다. 키케로에게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저술의 첫 동기는 되었겠지만 이 책은 엄연히 공간(公刊을 목표하였다. 이 저술의 시점을 기원전 44년으로 잡는다면, 카이사르 암살 이후 키케로가 로마의 공화주의자들에게서도 외면당하는 처지에서 아테나이로 도망치듯 황급히 떠난 바로 그때이다. 격랑에 시달리던 배 위에서 지력을 그러모아 키케로는 당시의 동료 시민들과 후대에 지침을 주고 싶어 했다. 공화주의자 키케로 최후의 미션이었다.
서구 연설의 전통을 환기하는 키케로의 수사학
공화국의 산적한 난제들 역시 연설로 풀어라
연설을 잘했던 인물들은 그리스에도 즐비하다. 그러나 역시 연설가 중 가장 큰 이름은 키케로다. 기반을 잃어가던 공화정적 가치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키케로도 수사학을 깊이 탐구하고 연설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수사학은 단순히 말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키케로가 옹호하던 가치들과 존망을 같이할 가장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남긴 열정 가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