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구멍에 빠지다
잠은 형체도 없고 크기도 없으며 소리도 촉감도 없습니다. 오직 시각만이 살아 있는 그곳은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붙잡으려는 순간 사라집니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잠이라는 여행은 물리적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우주 탐험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잠에 빠진다’, ‘잠에 든다’고 말하며 잠이라는 공간을 상정합니다. 늘 곁에 있다고 느끼는 친숙함과 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거리감, 낮 동안의 시간만큼을 고스란히 할애하지만 실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호함, 매일 드나들지만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문도 알 수 없는 이 양가적인 세계와의 간극을 좁혀 보면 어떨까? 잠을 시각화하고 공간화한다면 무엇이 나올까? 작은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책은 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무한히 눈앞에 펼쳐 보여 줍니다. 아무도 모르게 쑥 빠지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순간에 발을 담가 허우적대기도 하고, 타이밍을 놓쳐 계속 찾아 헤매기도 하고, 온갖 방해꾼들 때문에 쉽사리 막혀 버리기도 하는 구멍! 그 구멍 속으로 고개를 쏙 내밀면 환하게 펼쳐지는 고요한 세상이 바로 잠이라고 말해 줍니다. 과학적인 고증, 물리적인 계산보다는 일상의 다채로운 감각과 공통된 경험을 모아 만들어낸 따뜻한 세상, 깊은 바닷속 같기도 하고 머나먼 우주 같기도 한 신비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알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어 두려웠던 잠이 한층 편안하고 가깝게 다가옵니다.
잠시 엔진을 꺼두어도 좋을 시간
깨어 있는 동안 우리의 몸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을 계속 가동합니다. 생각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소통하며 에너지가 총 동원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게 멈춘 순간이라고 해도 외부의 세상을 받아들여 내부에서 반응하는 일, 머릿속 수많은 감정들의 운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는 동안만큼은 다릅니다. 전원은 대기 모드로 바뀌고 엔진은 자동으로 꺼집니다. 아무리 바쁜 세상을 사는 긴박한 사람이라도 자면서까지 일할 채비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잠은 이렇게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