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질병 중에서 가장 큰 것, 즉 뻔뻔함이지.”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당대 지적 풍토를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하는 현대성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메데이아」에서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소피스트처럼 서로 논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소피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당대 현실을 담은 것이다.
이아손: 하지만 내 생각에, 나를 구해주어서
당신이 얻은 게, 준 것보다 훨씬 큰 것 같소.
(……
또 모든 헬라스 사람들이 당신이 현명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당신은 명성을 누리고 있소.
(……
메데이아: 내가 보기엔, 어떤 불의한 자가 말을 잘하면,
그자는 더욱더 큰 벌을 갚아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는 말로써 불의를 가릴 수 있다 생각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감행하니까요. 하지만 그는 아주 현명하다곤 할 수 없지요.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지금 펼쳐지는 장면이 단지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우리피데스는 매우 지적인 작가여서, 그의 작품을 그저 감성만으로 대하면 그 참된 가치를 알아채기 힘들다.”
그는 자신이 문학의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관객/독자들도 그것을 함께 느끼도록 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는, 말하자면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시학에 대항하여, 거의 ‘브레히트 시학’을 주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는 어떤 인위성이 있는데, 그걸 숨기지 않고 오히려 거의 과시했다는 의미에서다.
―강대진, 「작품 해설」에서
● “용서하세요, 인간이 실수하는 건 당연합니다.” ―「힙폴뤼토스」에서
「힙폴뤼토스」는 젊은 파이드라가 남편의 아들 힙폴뤼토스를 짝사랑하다가 둘 다 파멸하는 이야기다. 힙폴뤼토스는 새어머니 파이드라의 사랑을 전하는 유모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그는 “내 혀가 맹세했지, 내 마음이 맹세한 것은 아니오.”라면서 폭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