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다음에 소극이 온다면, 소극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20세기 이래 미술과 비평이 주요하게 삼아 온 전략 가운데 하나는 폭로다. 현실을 은폐하거나 떠받치는 이면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폭로가 더 이상 소용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진실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상대에게 진실을 밝혀 본들 돌아오는 것은 헛소리뿐이라면,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일삼은 이들을 어떻게 조롱할 수 있을까.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다 알면서도 하는지라 진실과 관계를 유지하지만,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진실성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지라 진실을 한층 더 부식시킨다.”
“지난 15년간, 즉 2008년의 금융위기와 트럼프라는 영구적 재앙이 터져 나왔던 시기에 쓰인 이 원고들은 극도의 불평등, 기후 재난, 대중매체의 분열은 물론 전쟁, 테러, 감시도 일삼는 현 정권에 직면하여 미술과 비평과 소설에서 일어난 변화를 따져본 논평이다. 이 상황을 가늠해 보려고 나는 광범위한 작업들을 다양하게, 즉 징후적 표현, 비판적 탐색, 대안적 제안으로 고찰한다. 1부의 초점은 9.11 이후 비상사태 시기의 문화정치로, 외상, 편집증, 키치의 활용과 남용을 다룬다. 같은 시기에 시장과 미술관은 둘 다 거대하게 확장되었고 미술가들도 이 스펙터클한 변화에 비판적으로, 또 다른 식으로 대응했는데, 2부는 이 시기에 미술 제도를 개편한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되짚어 본다. 마지막으로, 3부는 최근의 미술, 영화, 소설에 반영된 매체의 변형을 개관한다. 여기서 탐색된 현상 중에는 ‘기계 시각’(machine vision,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가 다른 기계를 위해 만든 기호, ‘가동적 이미지’(operational images,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개입하는 이미지, 우리의 일상생활에 무척이나 널리 퍼져있는, 정보의 알고리듬 스크립팅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끔찍한 소리 같은데, 사실이 그렇다. 여러 면에서 우리가 내다보는 세계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이 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