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후기
고유한 기억에서 무한한 영원으로
표지 속 커다란 돌 위에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쉬고 있습니다. 느릿느릿 돌 위로 올라온 달팽이는 이제 느릿느릿 돌 아래로 기어 내려갈 것입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달팽이는 결국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여기,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돌 하나가 있습니다. 원래 모습 그대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브렌던 웬젤의 『돌 하나가 가만히』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지만 순간순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슈퍼영웅처럼 변신하는 것은 아니에요. 곁에 있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돌은 어두컴컴했다가 환히 빛나며, 거칠었다가 부드럽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언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곳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오다가다 만난 할머니는 저에게 어리다, 이쁘다, 하십니다. 대학생 친구들에게는 나이를 두 배나 먹은 아줌마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모, 작가님, 선생님, 누구 어머니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었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은인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무수한 사람이 만나는 나의 단면들이 결국 나라는 총합을 이루게 됩니다.
전작 『어떤 고양이가 보이니?』에서도 웬젤은 여우, 생쥐, 꿀벌, 지렁이, 박쥐 등 동물들마다 같은 고양이를 얼마나 다르게 감각하는지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고양이와의 관계, 시각 체계, 감각 체계가 다르다보니 같은 것을 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지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시간과 계절과 상황에 따라 하나의 돌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돌은 고유한 이야기가 남긴 하나의 기억인 동시에, 무수한 기억들이 모인 영원이 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관계의 상대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한 그 모든 소요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