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1장 진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1. 왜구 시대 제포와 삼포왜란/ 웅천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2. 웅천에 남은 일본의 성(城 왜성을 걷다/ 왜성 잔존물/ 이순신의 전사 2장 러일전쟁과 진해만 1. 근대 조일관계사(朝日?係史의 기초 지식 대학입시 문제에서 2. 전략적 요충 해군근거지 찾기 3. 거제도·가(假근거지 건설 실태 토지수용과 공사/ 해군근거지 건설과 주민/ 헐값으로 토지수용/ 진해만방위대에 의한 군령 공포 4. ‘일본해군 가(假근거지’ 흔적 기지건설 때의 증언/ 진해만과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 표적(標的 ?취도(吹島 5. ‘제국’의 건설 한국의 교과서에서/ 러일전쟁의 의미 6. 군항건설 계획이 시작되다 군항계획/ 군사도시 건설 3장 군항도시 진해 1. 진해의 도시계획 군항의 성격/ 거주구역 ‘격리’/ ‘동양무쌍(東洋無??의 대군항’/ 로터리의 큰 팽나무(대가, 大?/ 건축조례 2. 초기의 이민자들 임대인 명단/ 오쿠라구미(大倉組와 조선/ 유곽지 계획/ 조선 이주 가이드북 3. 군항건설 계획의 변경 진수부(鎭守府에서 요항부(要港府로/ 일본의 제사업(製?業 진출/ 장시간 노동·저임금 4. 해군지원병 훈련소 지원병의 징용과 훈련소 5. 일본의 패전과 일본인 귀환 ‘우리들의 아량’/ 일본인의 귀환/ 진해에서 물러남 4장 진해에서 살았던 사람들 1. 일본해해전기념탑과 한 사람의 일본인 부엉산의 산신령/ 아사히 간세이와 지쿄(慈?학원 2. 송진포의 해전기념비 복원 소동 기념비 철거/ 복원계획/ 계획 좌절의 의미 3. 로터리와 진해신사 흔적 패전 때의 신사 4. 진해고등여학교 『오우인(?蔭』/ 진해고녀 동창회 5. 3 ·1독립운동과 진해공립보통학교 신사참배 거부/ ‘내선공학(?鮮共學’으로/ 3·1 독립운동과 학교/ ‘불평 및 희망’/ 진해의 ‘졸업기념 사진첩’ 6. 덕환관음(?丸?音과 대화재 영화감상회 사건/ 진해콩과 스나짱/ 스나짱의 이름 7. 최초의 이순신 동상 진해의 이순신 동상/ 해수욕장과 어시장/ 일본인의 조선어 5장 벚꽃축제
군항도시, 진해! 그 역사를 걷다!
군항제 안내 소책자의 ‘우리나라 벚나무 유래’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다.
진해라고 하면 벚꽃이 연상되지만,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이 땅에 군항을 건설하게 되어, 도시의 미화를 위해 벚나무를 심은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착각한 시민들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벚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거의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후 1976년 4월, 진해를 세계 제일의 벚꽃도시로 육성하자는 대통령의 명령을 계기로 민·관·군이 일체가 되어 벚나무 심기운동을 전개한 결과, 현재는 8만여 그루를 헤아리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온 시가지에 벚꽃 터널이 생긴다. 오늘날 이 벚꽃은 진해 시민만의 것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벚꽃을 일본의 국화라고 간주하여 마치 왜국의 앞잡이가 침입해 온 것과 같이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벚나무는 일본에서 들어온 나무가 아닌 원래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일본에 의한 한국 강점의 역사와 진해의 군항 건설과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 또 왜 진해가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8·15 이후에 일단 베어진 벚나무를 다시 심기운동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진해에 대한 흥미가 점점 더해졌다.
그날 밤, 나는 부산의 숙소에서, 일본가옥이 남아 있는 진해의 뒷골목을 걸으며, 문득 식민지 시대를 헤매어 가는 듯 착각한 것이나, 거리의 여기저기에 마치 과거와 연결된 미로가 숨겨져 있는 듯이 느껴졌던 일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국가나 민족보다는 작은, 개인보다는 큰, 지역이라는 단위로 시대를 잘라내어, 그 미로를 더듬어 가면,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표정과 시대의 실상이 동시에 보여지는 듯한 역사 기록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단순히 당일치기 여행으로 진해에 나섰던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