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성서일과> 사용법
<성서일과>란
어느 날의 기도(1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더 중요한 것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욕심과 거짓
피할 수 없는 길
깊은 통찰력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게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드러나다와 드러내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가난하더라도
목자 앞에서
어리석은 꾀
더 많은 소유
말씀은 장식용이 아니다
잃어버린 웃음 찾기
나에게 주신 재능으로
사랑의 완성
살아있는 빵
쇠를 삼키는 녹
인간의 어리석음마저 사용하시는
잠든 주님
계란과 전갈
어리석은 자랑
잘못된 열정
어렵게 열리는 좁은 문
더듬어도 찾을 수 없는
재난을 당했을 때 약해지는 것은
한 가지 부족한 것
든거지난부자
어느 날의 기도(2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들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
하늘에 쌓을 보물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해도
고난은 우리를 엎드리게 한다
아브라함의 생각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
아간이 그리운 세상
길들일 수 없는 하나님
서지 못할 것이 서는 것을 보거든
불과 망치
부담이 되는 말씀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
희끗희끗 인생의 서리가 내렸어도
거룩함의 확장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결정적 약점
주님의 열쇠
일어나서 가운데 서라
주님의 얼굴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준의 전복
등을 돌린 사람들
마침내 낮아지는 날
아무도
어느 날의 기도(3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
숨을 수도 감출 수도 없다
빈정거리는 사람들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주 너희의 하나님만을
먼저 살펴야 할 것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하나님의 후회
파멸로 몰려가는 사람들
다른 양들
술꾼에 먹보
신앙의 두 기둥
하루 같은
그 힘의 이름은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삶을 돌아보며 ‘행복을 피하면서 찾았다’고 고백한다. 행복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면서도 행복을 한사코 피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사는 모든 이들의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우리 내면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이 확고하게 우리를 잡아채 절망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친다. 불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사람들은 분주함 속으로 도피한다. 그런데 분주함은 우리가 마땅히 보아야 할 자기 내면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이런 불모의 낙원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가? 루미는 일렁이는 버릇이 든 물은 바다에 이르러야 잠잠해지듯이, 거칠어진 마음을 고치려면 마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적인 나태함을 면치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나태함이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영혼이 메말라 활력과 생기를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시간을 정하여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음으로 삼아 우리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성서일과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비끄러매주는 아주 소중한 밧줄이다. 임의로 선택한 말씀이 아니라 주어진 본문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겸허한 경청자가 된다. ‘주여,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경청의 태도로 하나님의 현존 앞에 머물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시어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그 뜻을 가슴에 품을 때 우리 마음에는 든든한 기둥 하나가 바로 서게 된다. 기둥이 바로 서면 어지간한 무게가 얹혀도 무너지지 않는다.
꽃물, 마중물, 두레박, 손우물, 나비물, 하늘바라기, 도래샘으로 이어지는 묵상과 기도와 결심의 모든 과정이 삶으로 바치는 찬양으로 결실하면 좋겠다. 웨슬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에서 ‘우리 삶이 누군가 당신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