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자는 ‘땅’에 발을 딛고 있다
전국시대 정나라 출신의 도가 사상가 열자(列子, B.C. 450?-B.C. 375?는 노자의 제자이자 장자의 선배다. 311년 ‘영가의 난’(永嘉之亂을 겪으며 분실되고 4세기 후반에 재편집된 열자서는 이민족에 의한 한족 멸망과 오호십육국 시대 전란의 역사를 함께했다.
노자와 장자 사상과 함께 도가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열자서는 본체론이나 인식론에 있어서는 도가와 비슷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에서 열자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고유의 특징을 나타낸다. 노장이 탈속적인 태도로 고원한 도를 추구한다면 열자는 현실과 세속을 정확히 직시한다. “노자가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경지에 이른 달관한 도인이고 장자가 우주를 넘나드는 초월적 지인(至人이라고 한다면, 열자는 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842쪽이다.
열자서 속의 열자는 스승이나 깨달음을 주는 선생이 아닌, 노자나 호구자림 등의 스승에게 훈계받는 제자로 등장한다.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 속에서 인간의 분투를 드러내고 삶의 실상을 처절하게 그린다. 그 속에서 오롯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말하는 열자의 사상은 다른 어떤 관념적 사상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엄숙주의에 젖은 도학자들과는 또 다른 도(道를 추구했던 열자. 공사다망한 역사를 거치며 살아남은 열자서의 전수 과정처럼, 그 안에 담긴 열자의 사상 또한 인간이 발붙인 땅에서부터 시작되고 자라난다.
■ 억압 속에서도 소리 없는 각광을 받았던 『열자』
“승정원에 전교하고 『근사록』과 『전한서』 등을 본 뒤에 『장자』 『노자』 『열자』 삼자(三子의 글을 강(講하고자 하는데, 경(卿 등의 뜻은 어떠한가?”(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 1월 18일 신해 1483년
조선의 성종(成宗, 1457-95은 위와 같은 말을 남기며 도가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러나 주자학적 도통(道統을 벗어난 모든 사상을 이단 취급했던 조선의 억불숭유책은 이 땅에 이렇다 할 도가 사상 관련 저술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