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책머리에
글을 시작하며
마조의 화두
1. 완월玩月(157: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2. 즉심卽心(159: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
3. 전수展手(160: 마음이 곧 부처이다
4. 일구一口(161: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신 뒤에야 알려주겠다
5. 사구四句(164: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
6. 원상圓相(165: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
7. 일면日面(169: 일면불, 월면불
남전의 화두
1. 참묘斬猫(207: 고양이를 베다
2. 물외物外(210: 무엇이 물物 바깥에 있는 도입니까?
3. 가중家中(212: 어떤 때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4. 호풍好風(222: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구나
5. 즉심卽心(226: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도 아니다
6. 양아養鵝(238: 어찌해야 거위를 꺼내겠습니까?
7. 예모刈茅(240: 이 낫을 신나게 쓴다
8. 정병淨甁(242: 경계를 건드리지 말고 물을 가져오너라
9. 심불心不(243: 마음은 부처가 아니요, 지혜는 도가 아니다
10. 견호見虎(244: 그것은 호랑이오
조주의 화두
1. 유주有主(406: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2. 평상平常(407: 평상심이 도이다
3. 만법萬法(408: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4. 나복蘿蔔(409: 진주에서 큰 나복蘿蔔이 난다
5. 조주趙州(410: 동문, 남문, 서문, 북문이다
6. 끽다喫茶(411: 차를 마시게나
7. 대산臺山(412: 오대산 가는 길이 어디요?
8. 지도至道(413: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9. 천상天上(414: 천상천하 유아독존!
10. 과굴?窟(415: 이 말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11. 위인爲人(416: 어찌 이 문구를 다 인용하지 않는가?
12. 불성佛性(417: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13. 해자孩子(418: 급히 흐르는 물 위에서 공을 친다
14. 간전
불교는 크게 중관, 유식, 인명 등의 인도불교와 천태, 화엄, 선 등의 중국불교로 나뉠 수 있다. 이 두 유형의 불교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중국불교 중 선불교는 다른 중국불교와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선불교가 다른 중국불교보다 더 철저하게 차이 그 자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차이 그 자체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선불교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과 가깝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 ≪의미의 논리≫에서 신라의 파초혜청 선사의 화두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이 ≪의미의 논리≫에 보이는 들뢰즈의 화두 해독 방식이 선사들의 모든 화두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선문염송집≫에 실린 화두 중 우선적으로 마조, 남전, 조주의 화두를 해독하여, 선사들의 사유 방식과 들뢰즈의 사유 방식이 동일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99칙의 화두를 활구, 사구, 방행, 파주 등 선불교의 용어를 써 가며, 때로는 무의미, 의미, 사건, 대사건, 수렴, 발산 등 질 들뢰즈의 용어를 써 가며 99칙의 화두 하나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밝혀놓았다. 동아시아에는 중국의 ≪벽암록≫, ≪종용록≫ 등, 그리고 일본의 ≪종전초≫, ≪불이초≫ 등 화두에 대한 전통적인 주석서가 있긴 했지만, 현대 들뢰즈 철학과 교감하며 화두를 해독한 책은 이 책이 최초이다.
책 속에서
14. 간전看箭(419: 화살을 보라!
조주가 수유를 찾아가서 법당으로 올라가자마자, 수유가 말했다.
“화살을 보라!”
선사도 말했다.
“화살을 보라!”
수유가 말했다.
“지나갔다!”
선사가 말했다.
“맞았다!”
조주와 수유茱萸 두 선사가 법거량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수유를 찾아와 법당에 들어선 선사는 조주이다. 조주가 법당에 들어섰으니 수유는 조주에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법당은 법을 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수유는 도전해 오는 조주에게 “화살을 보라” 하며 대응했다. 조주 역시 “화살을 보라” 하며 맞대응한다. 지금 허공에 두 화살이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