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시대를 견디는 한 지식인의 초상
1969년에 시작하여(『월간중앙』 1972년 초에 걸쳐 발표된(『월간문학』 총 15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제목과는 달리 주인공 구보씨의 하루의 행장기(行狀記가 아니다. 명망 있는 소설가 구보씨가 사회나 문화의 중심부에 편입되지 못한 채 서울을 헤맨다. 1969년 동짓달부터 1972년 5월까지의 3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구보씨는 스스로 역사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채 거리를 헤매며 ‘시대’를 괴로워한다.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는 세계정세의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의 대학에는 위수령, 휴업령이 내려지고, 남북 대화가 이루어지는 듯하면서도 무장 공비가 침투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근대적 이상을 펼치지도 못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그런 가운데 구보씨가 홀로 북쪽에서 피난 온 지는 20년이 넘어선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어떠한 문학적 형식도 찾아내지 못한 채, 문학과 현실과의 괴리만을 맛보며 “역사의 객체, 꼭두각시”에 불과한 스스로를 날카롭게 의식할 따름이다. 깊어가는 고뇌와 끝없는 방황에 되돌아오는 답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주체를 둘러싼 현실, 그것뿐이다.
이렇듯 아침에 눈을 떠서 일상을 관찰하고 그에 반응하는 화자의 심경을 마음 가는대로 서술한 끝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맺는 극히 좁은 일상성의 반복이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룬다. 이 반복되는 소설의 구조는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하루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작가 의식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붙박인 채 예술가, 지식인 그리고 근대인으로 살아가는 최인훈의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토로하면서도 개인을 둘러싼 전체-외부 현실을 날선 시선 안에 붙든다. 여기에 재치와 세련의 면모를 잃지 않는 작가 최인훈의 문체가 번뜩이며 단언컨대, 최인훈이어서 가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