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6
작가의 말 15
프롤로그. 모국으로 19
1장. 국군 보안사령부에서(1981년 9월 9일~10월 25일 37
2장. 서울구치소에서(1981년 10월 26일~1983년 5월 24일 45
3장. 광주교도소에서(1983년 5월 25일~1989년 5월 15일 69
4장. 대구교도소에서(1989년 5월 16일~1992년 7월 9일 193
5장. 대전교도소에서(1992년 7월 10일~1996년 8월 14일 247
에필로그. 집으로 275
후기. 나는 기다림에 지지 않는다 281
부록. 조국이 만든 간첩, 김태홍 339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자랐고, 민족의식이 강한 부모의 영향으로 일본식 성명인 통명 대신 본명으로 살아온 ‘재일 교포 2세’.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급우가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멸시하듯 부른 ‘조센진’. 대학을 나오고 성실함을 인정받아도 정작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하던 형들과 누나를 보며 일본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치길 꿈꾼 ‘한국인’. 불법 체포된 1981년 9월 9일부터 가석방된 1996년 8월 15일까지 약 15년, 5455일 동안 조국의 교도소에 갇혀 지낸 ‘간첩’. 2017년 11월 23일, 영장 없이 체포된 지 36년 2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의 ‘무고한 피해자’.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여러 이름들로 불리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기 위해 오래 기억하고 기록한 책으로 고국의 독자에게 처음 건네는 말. “나는 김태홍입니다.”
기억에서 기록으로 : 15년 동안 기억해 기록하고, 다시 20여 년 세월이 지나서야 꺼낸 이야기
“일본에서 살면서 아무리 어려움을 겪었어도,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지독한 짓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 충격이 너무 컸다.”
“나는 기록하지 않고 기억했다. 감옥에 갇힌 내게는, 기록보다는 기억이 무난했다.”
“갇힌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각자 어떤 삶의 길을 걸어왔는지 가능한 대로 기회를 만들어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려 애썼다. 어떤 일을 잘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일을 몇 번이고 거듭 생각하는 것이다. 운동 시간에 운동장을 달릴 때나 방에서 요가 운동을 할 때 늘 중요한 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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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지 않은 죄로 기약 없는 수감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김태홍은 잊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을 취조한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들과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기억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교도관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같은 방에서 지내거나 통방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