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인트로_다시, 숲으로
제1부 우리가 정말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1. 4년의 여행, 20년의 침묵
2.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3. 부끄러움과 혐오를 넘어서
제2부 지질학의 문체로 쓴 여행기
1. 해석의 변증법에 반대하며
2. ‘자기’(自己의 발생학 :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3. 초월하는 역사 vs 생성하는 구조
제3부 열대, 어디에나 있는 근대의 타자
1. 남아메리카, 탐욕과 무지의 신대륙?
2. 여행, 자기를 탈중심화하는 길
3.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제4부 문명은 소외를 반복한다
1. 전신선을 따라 황폐해지는 세계
2. 문화적 토대로서의 인류 무의식
3. 문명의 최후 형태, 카스트의 비인간화
제5부 차이를 욕망하는 야생의 과학
1. 야만은 없다
2. 열대의 세례식
3. 우주적 리듬으로서의 대칭성
4. 야생의 사고, 비적대적 모순의 종합
제6부 증여에는 끝이 없다
1. 열대, 수많은 타자들의 창발터
2. 포식, 얽힘의 총체적 형식
3. 호혜, 상호부조의 기술
4. 창발하는 혼과 감사하는 나
제7부 고유명 없는 자들의 자유
1. 과대한 숲과 과소한 인구
2. 지배와 복종이 없는 우정
3. 위계와 배신을 거부하는 무문자 사회
4. 무한한 말들로 경험되는 고유한 우리
제8부 공생공락의 숲
1. 원시의 사회계약론
2. 관대함, 관계 속의 권력
3. 모두 숲의 인간임을 알다
제9부 인류학, 나의 무지를 알아 가는 공부
1. 탁실라, 무(無의 근원
2. 필요한 것은 고향을 떠나려는 용기
3. 붓다와 함께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타자’를 찾아 떠나는 동화라고, 창발하는 시공간을 살아야 하는 ‘자신’을 이해하고 성숙시키는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언뜻 보면 ‘타자’를 찾아 떠난다는 것과 ‘자신’을 이해하고 성숙시킨다는 것이 상반되게 느껴지는데요. 이에 대해 조금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남미로 떠난 것은 27살이던 1935년입니다. 당시의 파리는 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기계로 개발되지 않은 천연의 자연, 회사도 학교도 없이 미개한 식민지들. 서양문명-백인남성을 기준으로 어떤 대지나 인종을 열등한 ‘타자’라고 불렀던 것이죠. 유럽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타자의 세계로 떠났다가 우쭐해져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식 근대화를 인류사의 정점으로 생각하는 이 편협함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남아메리카로 떠났습니다. 과연 그들이 정말 나와 다를까?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까? 하면서요.
『슬픈 열대』는 1950년, 그가 42세 되던 해에 쓰인 여행기입니다. 놀랍죠. 레비-스트로스는 이미 『친족의 기본구조』(1949를 비롯한 여러 연구로 학계에 큰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까요. 굳이 여행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남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왜 『슬픈 열대』라는 형식이 필요했을까요? 게다가 여행기라지만 남미 소개가 주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열대를 통과하는 자기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타자의 삶에 관심을 두었던 인류학자는 왜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는 왜 15년이 필요했을까요?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에게 타자와 자기의 위치를 묻는 일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의 어려움도요. 그의 주요 저작은 『야생의 사고』(1962와 『신화학』 4권(1964~1971입니다. 이 두 책은 1950년대 초반에 기획되었고 『슬픈 열대』와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뒤에 출간된 두 책 모두 타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