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의 신화는 민중이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 안정된 중산계급 정부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봉사했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장점을 갖고 있었든 이 신화는 이제 제거되어야 한다. 세계 어디로 눈을 돌려도, 우리는 대의제 정부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최악의 무분별한 소비주의 충동이나 미디어, 사회공학에 의해 조종되면서, 경제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문화, 인격, 공동체, 자연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거대한 골이 생겨나고 있다. 한편 이 와중에 우리(민중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고, 더욱이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을 갖게 된다.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신화이다.”(본문 54쪽
‘대의민주주의’는 근대의 신화이다
세계가치설문조사(WVS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이 뚜렷하게 늘어나고 있다. 1998년에는 그 수가 전체 인구의 대략 17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20년 조사에서는 30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아마도 일차적으로 그것은 IMF 외환위기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경험하면서, 민주주의도 좋지만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 팽배해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오해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럽지만, 공동체가 삶을 영위하는 원리로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신념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현상이다.
더욱이 이것은 비단 한국사회에 국한된 사정도 아니다.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생태적·사회적 위기 속에서 권위적 정권이나 포퓰리즘 정치가 지구촌 곳곳에서 득세하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는 시효를 다한 원리인 것일까? 실제로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하는 국민국가체제가 주류가 되어온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불평등은 극대화되었고 정치권력은 소수 엘리트 집단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