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없이 쿨하고 하찮은 사랑
어쩌면 이건 어른의 맛
작은 쉼표를 찍어주고 싶다면
잠자는 난쟁이의 콧털을 건드린 날에는
언제나 우리 곁에
심심한 이야기의 쓸모
끝나고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나만 알고 싶었는데!
우울한 밤에는 마트 전단지를 펼치고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보이지 않는 반쪽
추억 필터 없이도 아름다운
만만한 행복의 나라
그럼에도 사치가 필요한 날에는
혹시, 설마, 어쩌면, 만약에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우리의 최선을 기억해
하늘색 슬픔을 가지고
팔다리가 굵고 췌장이 건강한 할머니
에필로그 넘어진 날에는 차가운 위로를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남김없이 녹고 나면,
깨끗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좋아, 다시 시작하는 거야.”
살다보면 우리는 자주 뜨거워진다. 뜨겁게 일하고, 뜨겁게 화내고, 뜨겁게 아프고, 또 뜨겁게 즐겁다. 그러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도 많이 찾아오기 마련. 하현 작가는 그런 삶의 장면을 포착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손님을 만났을 때, 우울한 밤 펼친 마트 전단지에서 특가 상품을 만났을 때, 그리고 1인 노래방에서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르던 날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거나 사랑하는 소설을 읽을 때에도, 항상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뜨겁게 끓어오르다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인생에는 굴곡이 생기고, 우리의 심신은 단련되어왔을 것이다. 그런 부침(浮沈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다가올 뜨거운 일에도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는 이유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까짓것.” 하며 또 덤벼볼 수 있다.
아빠 손을 잡고 동네 마트에 가던 어린이 시절을 지나, 운동회에서 선보일 율동 연습을 해야 했던 초등학생을 지나, 친구와 함께 학원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학생을 지나, 황금 같은 방학을 반납하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던 대학생을 지나,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 강산은 두 번도 더 변했지만 아이스크림은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든든하다. 그렇게 더 나이가 들어 ‘팔다리가 튼튼하고 췌장이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12층 계단을 오르고 있을 노년의 하현 작가를 상상하면, 그 모습 역시 여전하다. 계속해서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세 개씩 먹으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바밤바, 메로나, 더위사냥, 수박바, 빠삐코, 모두 대한민국 어느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