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재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할로우 키즈〉 - 존재감 없이 얌전한 유치원생 재이. 그는 핼러윈 행사에서 드라큘라 역을 맡고 싶어 하지만, 원장과 친한 부모의 아들에게 역할을 빼앗기고 만다. 재이는 결국 눈구멍이 두 개 뚫린 흰 천을 뒤집어써 조악한 유령으로 분장하는데, 어느 순간 투명 인간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널 등쳐먹어서 미안해. 넌 대부분 한심하고 가끔 사랑스럽지만 잘 살 거야.”
〈가장 작은 신〉 - 2년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급성 먼지바람이 불어닥쳐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수안은 공포와 불안에 떨며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미주가 방독면을 쓴 채 다짜고짜 문을 두드린다. 먼지바람 핑계를 대는 미주를 마지못해 집에 들이지만, 수안은 미주의 행동이 수상쩍기만 하다. 미주는 사실 다단계 회사의 영업 사원이며, 오랜 시간 고립되어 외로운 수안의 신뢰를 얻어 실적을 쌓은 후 영구 회원 가입 동의서를 받는 게 최종 목표다. 하지만 미주는 자기가 소개하는 물건을 덥석 사주는 수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수안은 어느새 미주의 의도를 간파한다. 그들은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며 아슬아슬한 만남을 지속하는데…….
“석류야, 넌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고기와 석류〉 - 한때 정육 식당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낸 옥주는, 장례식장에서 수육을 삶으며 홀로 근근이 살아간다. 남편에겐 오랜 시간 간병하고 임종을 지켜준 사람이 있었지만, 옥주가 죽을 땐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열대야가 기승인 여름날 퇴근길에 가게 앞 전봇대 근처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괴이한 존재를 발견한다. 피부는 창백하고 눈동자는 석류알처럼 붉은 작은 괴물 ‘석류’였다. 옥주는 인육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석류를 기꺼이 집 안으로 들인다. 석류라면 자신의 시체를 깨끗하게 처리해줄 테니까. 석류는 옥주가 구해 오는 돼지와 소의 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