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프롤로그
010 긴지느러미들쇠고래 Globicephala melas
012 커모드곰 Ursus americanus kermodei
014 아시아사향고양이 Paradoxurus hermaphroditus
016 턱끈펭귄 Pygoscelis antarcticus
018 카피바라 Hydrochoerus hydrochaeris
020 팀버방울뱀 Crotalus horridus
022 북극고래 Balaena mysticetus
024 회색늑대 Canis lupus
026 아메리카바닷가재 Homarus americanus
028 퓨마 Puma concolor
030 + 동물원이라는 방주
032 티베트영양 Pantholops hodgsonii
034 남방큰돌고래 Tursiops aduncus
036 오리너구리 Ornithorhynchus anatinus
038 아메리카들소 Bison bison
040 유라시아수달 Lutra lutra
042 큰주홍부전나비 Lycaena dispar
044 붉은점모시나비 Parnassius bremeri
046 + 곤충 속에서 살다
048 사바나천산갑 Smutsia temminckii
050 나그네알바트로스 Diomedea exulans
052 상괭이 Neophocaena phocaenoides
054 갈기세발가락나무늘보 Bradypus torquatus
056 친링판다 Ailuropoda melanoleuca qinlingensis
058 바다이구아나 Amblyrhynchus cristatus
060 북극곰 Ursus maritimus
062 + 카푸치노곰과 잡종 이구아나
064 금개구리 Pelophylax chosenicus
066 눈표범 Panthera uncia
068 코알라 Phascolarctos cinereus
070 이위 Drepanis coccinea
072 + 열대 낙원, 하와이
074 서인도매너티 Trichechus mana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 간절한 편지에 답장을 보내야 해요
안녕하세요. 긴지느러미들쇠고래예요.
우리는 매년 페로제도를 지나갈 때마다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들어요.
그곳에는 살려 달라고 외치는 친구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해요.
비명 소리가 그치고 나면 붉게 물든 바다를 멀리서 바라봐요.
슬픔 속에서 죽어 간 친구들을 애도할 거예요.
하지만 인간을 증오하지는 않겠어요.
우리 고래는 증오가 나쁘다는 걸 아니까요.
매년 덴마크령 페로제도 앞바다에서는 그라인다드랍(Grindadrap이라는 고래 사냥 축제가 열립니다. 축제를 치르고자 이 지역 사람들은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좁고 얕은 만으로 몰아간 다음, 밧줄로 끌어내 전용 도구로 도살하죠. 이 때문에 2021년 9월에만 돌고래 1,428마리가 살해되었습니다.
그라인다드랍은 과거, 매우 척박한 페로제도에서 초기 정착민들이 살아남고자 고래를 사냥한 데에서 비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페로제도의 주요 산업은 조선업과 관광업, 어업이며, 덴마크 정부에서 막대한 지원금도 받기에 더 이상 ‘생존’ 때문에 고래를 잡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해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고래 사냥을 ‘전통 축제’라는 이름으로 이어 갑니다.
무자비하게 살해되면서도 고래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몸집이 크기에 마음만 먹으면 반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심지어 고래는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가 인간보다 큽니다. 인간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으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감정을 더욱 잘 절제합니다.
긴지느러미들쇠고래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 그래서 숙연해지는 동시에 부끄러워집니다. 인간은 과거에는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이제는 전통(이라 쓰고 유희라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끊임없이 고래를 죽여 대는데, 고래는 고통을 인내하는 초월자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고래 앞에서 어떻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사람 때문에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