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행력이 중요한가
선스타인은 넛지를 일종의 내비게이션에 비유한다.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안내하지만, 그렇다고 그 지시대로 차를 몰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안내를 무시하고 내키는 길로 갈 수 있고, 중간에 길을 잃더라도 내비의 안내만 따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선택자에게 올바른 경로를 찾아 주는 힘이 항행력이다.
우리 인생에도 항행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병에 걸릴 수도, 법률적 조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실직 상황이나 양육의 어려움 속에서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때 항행력이 잘 갖춰진 사회는 넛지를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행위자를 이끈다. 올바른 의사와 변호사를 만나게 해주고, 올바른 일자리와 올바른 양육 조언가를 찾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는 낮은 항행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과거 미국 농무부가 시민들의 건강한 식습관을 홍보하기 위해 〈푸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본문 45~49면. 처음 만들어진 〈푸드 피라미드〉의 아이콘은 시각적으로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섭취해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도 없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 행동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이후 개선된 아이콘이 〈푸드 플레이트〉다. 접시 모양의 그림에 섭취해야 할 식품들의 비율이 한눈에 잘 드러났다. 시각적 정보 개선을 통해 항행력을 높여 준 사례이다. 항행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훌륭한 도시는 누구든 쉽게 돌아다닐 수 있고, 훌륭한 공항이나 웹 사이트도 그렇다. 그것은 넛지의 목표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특정 계층에게 더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넛지의 윤리적 고민은 필요하다. 선스타인은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의 말을 인용하며, 가난한 계층에서 낮은 항행력이 어떻게 중대한 문제로 불거지는지 설명한다. 〈가난할수록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 (…… 이제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일을 멈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