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센강이 낳은 도시 파리
파리의 다리
석조 건물의 기억
철의 시대
끝없이 펼쳐진 영감의 거리들
이상의 대로, 전설의 광장
파리의 사람들
파리의 밤
파리의 지붕
도시의 오아시스
과거의 파리, 이후의 파리
흐르는 계절 따라
찾아보기 (파리 지도
“수많은 소설을 낳는 도시, 세계의 머리…” - 오노레 드 발자크
센강, 몽마르트르, 파리의 지붕엔 온갖 세파를 견뎌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럽 유명 도시 중 파리는 가장 젊다. 고대 유적으로 유명한 그리스 아테네나 이탈리아 로마와 달리 프랑스 파리가 파리다워진 건 19세기 후반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례로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유명한 작품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의 장소인 더블린 광장을 보자. 그림은 그곳을 지금 찍은 사진과 딱 떨어질 정도로 겹쳐진다. “저곳이 오늘 우리가 그려야 할 그림”이라는 에밀 졸라의 말을 따른 듯 클로드 모네가 집중해 그린 ‘생라자르역’ 연작들 역시 오늘날에도 그대로 당당한 모습을 자랑한다. 카미유 피사로의 ‘생토노레 거리’, 귀스타브 루아조의 ‘바스티유 광장’,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퐁뇌프 다리’… 이 책 속의 파리는 지금도 그림 같은 모습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파리는 19세기 말 급속도로 변화했고, 그 변화는 20세기 세계 각지의 도시 건설 계획에 큰 영감을 주었다. 너무 빠른 변화에 부작용이 따른 것은 물론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파리에 머물 때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 본 풍경은 종종 검은 연기가 악취를 풍기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반 고흐의 1887년 작품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의 파리 경계에서’는 앞으로 더욱 고달퍼질 파리 교외 지역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하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엔 여기저기 채석장 구멍이 난 탓에 나중에 이곳의 건설업자들은 애를 좀 먹었다. 서민의 화가로 불린 막시밀리앙 뤼스는 곧 철거될 운명의 몽마르트르 영세민촌의 마지막 모습을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잡목이 무성한 몽마르트르’(1904년를 그린 이후 그간의 점묘파 원칙을 뒤로하고 사실주의로 돌아서 만년까지 그 진실성을 고수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처럼 파리도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기 어려웠다면 1615년에 개장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레데리크 우브롱이 꽃시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