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자살이 합법적이었고 긍정적으로 이해받았기 때문에 권고를 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자살은 오래전부터 터부시된 주제였다. 죽음의 한 형태임에도 신과 부모로부터 받은 삶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점, 자기 자신을 살인한다는 측면에서 불경하거나 인륜을 저버린 일로 치부되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장례 의식도 치르지 않은 채 그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잊으려 노력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이르러서 악이나 죄의 표상보다는 점차 하나의 질병적 증후(症候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그 증후의 주체를 개인으로 보고 자살을 광기나 우울증, 신경쇠약, 자아 분열 등과 같은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인 병리 현상과 관련된 증후로 간주한 반면, 뒤르켕의 경우에는 자살을 사회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여 하나의 문화권 내에서 발생하는 집합적 증후로 간주하였다. 19세기 말부터 자살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들이 이루어지면서 자살은 비로소 터부도 아니고 하나의 단순한 사건도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인정되고 평가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살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가족이나 사회에까지 미치는 파장이 워낙 커 집단적이자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자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특히 예방에 초점을 두고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미 자살한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럴 용기로 살아내면 된다고들 말하는데 왜 그러지 못한 것일까? 자살은 보통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최종 선택이라고들 생각하는데, 더 넓게 보면 자신의 삶과 사회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결정이다. 따라서 자살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