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나?
‘사물 세계의 관상학자’를 꿈꾸는 철학자가 펼쳐 보이는 정보의 현상학
한병철은 오늘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현상학’을 연구해왔다. 신작 《사물의 소멸》(원제: Unginge에서 그는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가 수십 년 전 제시한바 사람들이 ‘정보’라고 부르는 ‘반사물(Unding’들이 사물을 몰아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석을 이어받아, 2020년대의 오늘 이러한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는지를 톺아본다. 에리히 프롬,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헤겔, 니체, 한스 울리히 굼브레히트, 로베르트 발저, 페터 한트케, 쇼사나 주보프, 그리고 하이데거를 두루 참조하며 예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보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의 참모습을 그려 보인다.
“《사물의 소멸》에서 제가 내놓은 주장들은 이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실재를 지각할 때 무엇보다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지각한다. 그리하여 실재와의 사물적 접촉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실재는 고유한 여기 있음을 박탈당한다. 우리는 실재의 물질적 울림들을 더는 지각하지 못한다. 빈틈없는 막처럼 사물을 감싼 정보층이 집약성에 대한 지각을 차단한다. 정보로 환원된 지각은 우리를 기분과 분위기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공간들은 고유한 시학(詩學, poetik을 상실한다. 그 안에서 정보가 분배되는, 공간 없는 연결망들이 공간들을 밀어낸다. 현재에,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디지털 시대는 시간의 향기를 몰아낸다. 시간은 점들과 같은 현재들의 계열로 원자화된다. 원자들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시간을 서사적으로 다루는 실행이 비로소 향기 나는 시간의 분자들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실재의 정보화는 공간 및 시간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 주장들은 어둡게 채색하기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건 현상학입니다.” (175-176쪽
스마트폰과 셀피에서 스마트홈, 인공지능까지
세계의 전면적인 디지털화는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인도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