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얼마짜리일까’
고민하던 중 나타난 검은 고양이
‘참을 인이 세 번이면 반성문도 면한다지.’(본문 13면 정인은 오늘도 자신의 이름에 들어간 ‘인’이 ‘사람 인’이 아니라 ‘참을 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할 수 없고, 낡은 운동화로 느리게 걸어야 하는 중학생 현정인. 정인은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마치 응달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햇볕이 한아름 드는 운동장과는 달리 버려진 것들이 쉬는 학교 뒤 폐지 수거함이 정인의 아지트다. 어느 날 정인은 아지트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친다. 그런데 이 검은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 실루엣이 벽에 아롱졌다. 찡긋거리는 수염과, 위로 바짝 솟은 귀, 날렵해 보이는 몸매가 점점 부풀면서…….
…
“누, 누구…….”
정인의 입이 벌어졌다. ―본문 34면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소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고양이는 자신을 악마 ‘헬렐 벤 샤하르’라고 소개한다. 헬렐은 휴가 중으로, 일주일 간 정인의 옆에 있겠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휴식이 헬렐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헬렐이 가지고 있는 주특기는 바로 유혹. 그리고 그가 얻고 싶은 것은 정인의 마음이다. 헬렐은 다른 인간에게 하던 것처럼 그저 욕망을 건드리고 심지에 불을 지피면 소년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소년이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악마가 손가락을 튕기자 악마 주위를 맴돌던 골판지가 척척 접혀 모양을 만들더니 곱슬머리가 풍성한 다비드로 변했다.
“나는 너를 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아, 좀. 골판지 구기지 마세요.” ―본문 92면
하지만 정인은 아직 10대 소년일 뿐이고, 남보다 단단하다지만 종종 상황이 사람을 무너지게 한다. 지금까지 헬렐의 유혹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 무색하게 세상은 정인에게 요행을 바라게 만들고, 헬렐은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