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우면 죄의 무게도 덜 수 있을까?
누구나 잘못된 선택,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때때로 찾아오는 괴로움에 차라리 기억을 지워 버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경성 기억 극장』은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 주는 ‘기억 삭제 장치’가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려는 과학자, 기억을 지워 역사를 왜곡하려는 군인, 이를 막으려는 비밀스러운 조직의 이야기가 얼떨결에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어린이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기억을 지운다는 설정은 1945년 경성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경성 기억 극장』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해서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명암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고민하고 성장하는 어린이
시절이 어수선할 때 가장 고통 받는 존재는 약자이다. 일제 강점기, 어른들이 전쟁터로, 군수 공장으로 끌려가면 의지가지없는 어린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덕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경성 땅에 홀로 남겨진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큰 빚까지 진 터라 같은 집에 사는 수현이 아저씨를 밀고하면 빚을 갚아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버린다. 덕구는 고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아저씨를 보고 기억을 지워 손쉽게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자신의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덕구와 달리 경성 기억 극장을 찾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한다. 민간인을 죽인 군인도,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순사도 자신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면서도 결국은 죄에 짓눌려 기억을 지워 버린다. 기억을 지우고도 그 흔적에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과오와 직면한 덕구는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찾